매거진 일상 시선

무계획의 기억 속 바다

by 권씀

생각보단 무계획이란 게 쉽진 않아. 언제 일어나서 비타민을 챙겨먹고 밥을 지어 먹고 또 잠은 몇시에 자고. 딱 떨어지는 시간에 내 몸을 길들인다는 건 수없이 되풀이해 온 일종의 습관인 거라. 어떤 나라에 새겨진 하나의 관습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적의 약속을 했던 걸까.


카메라를 들고선 무턱대고 걸어보기라도 할까. 날씨를 보면서 어느 정도 걸을 수 있는지 가늠을 해. 비가 올지, 해가 얼마나 쨍쨍할지를 가늠하면서. 또 마음은 갈팡질팡이라 결국 생각만 하고선 침대 위 앉아서 발을 동당거리며 내일 할 일을 생각해. 오전엔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점심엔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내고 오후엔 미뤘던 작업을 하고. 그런 다음엔. 그런 다음엔. 그래. 걸으려던 걸 해야겠지.


사람은 태어나서 얼마나 많이 걸을까. 공원을 거닐다 저만치 앞에서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는 아기를 봐. 두걸음 떼다 넘어지고, 다시 두걸음, 또 세걸음. 기우뚱하기도 뚱땅거리기도 하는 그 걸음이 좀 안쓰럽기도 해. 저 아이는 이제 발걸음을 떼서 얼마만큼의 걸음을 채워나가야 할까.


비 온 뒤 푸르스름한 저녁을 상상해. 습하지도 마냥 쾌적하지도 않게 그저 미세먼지만 씻어 놓은 저녁. 맑은 공기를 들이킨 게 언제였더라.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 옥상 위에서 전구를 켜놓고 평상 위에서 하늘을 바라봤던 건 또 언제였더라. 가물가물한 그 즈음이 문득 생각나.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하루종일 머무르다 집에 돌아와 누우면 귀에 찰박 찰박 파도 소리가 들리곤 했지. 한참이나 찰박거리는 소릴 듣다가 어느새 잠이 들면 낮에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바다 저 아래 깊숙한 곳까지 헤엄치고 있는 내가 있었어. 세상 가장 큰 동물인 고래를 향해서 말이야. 비가 내린 날엔 어린 시절 놀던 바다가 생각나. 내가 머무르던 곳은 얕았지만 저 멀리 어딘가엔 고래가 헤엄치고 있었을 그 바다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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