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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선물

by 권씀

그리 멀지 않은 그 시절, 겨울이 되면 리어카에서 캐럴이 울려 퍼졌다. 여름휴가철이면 휴가지로 유명한 곳들 근처엔 꼭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리어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을 파는 잡화상 트럭도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그게 마땅치가 않아서 대개 카세트테이프 옆에 벙어리장갑이나 목도리 같은 걸 두고 겸사겸사 팔기도 했다. 지금보다 계절의 색이 선명했던 때, TV에서는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가요프로그램에서는 인기가수들이 나와 캐럴을 불렀고 겨울 특수를 노리고 캐럴 음반을 냈다. 지금 시점에서는 1, 1.5세대 아이돌이라 구분되는 그들이 부르는 캐럴은 연말, 성탄절 분위기에 한몫을 했고, 가게 안팎을 구분 않고 길거리에 울려 퍼지곤 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지만,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뭔가 몽환적인 감상에 젖어들곤 한다. 1년 내내 아예 안 울 수는 없었지만 올해는 그래도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다 싶으면 12월이 시작되자마자 편지를 쓰곤 했다. '산타 할아버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누나랑 싸우지 않았으니까, 이번엔 닌자 거북이 장난감 주세요.'라고. 일종의 거래였고 일종의 큰 다짐이었다. 이번에 원하는 걸 준다면 말을 더 잘 듣겠노라고. 그 옛날 가야국에서 불렀다던 구지가도 이런 맥락이었을까. 한 해 농사의 풍요를 바라고자 불렀다던 그 구지가. 구지가를 알 턱이 없었던 어린 시절, 그래도 무언갈 약속을 하고 지켜내면 보상이 따른다는 건 알 나이라 어찌 보면 영악하게 소원을 빌었던 때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고 평소 때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테지만, 일찍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뭔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잠자리에 일찍 들곤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면 머리맡에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었고 졸린 눈을 비비며 뜯어보면 로봇 장난감이 가슴을 펴고 상자 안에서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닌자 거북이는 아니었지만 온전히 내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했기에 로봇 장난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하다.


처음 성탄 선물을 받고 너덧해가 지난 아홉 살 되던 해에는 학교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너무나도 확고하게 확신을 주는 바람에 성탄절이 되기도 전에 김이 샜었다. 아침 일찍 눈떠보면 알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넘겼어도 될 법했건만. 그 해 성탄절 새벽엔 그리 춥지도 않아 이불도 덮지 않고 내복 바람으로 잠을 잤었다. 그리고 그 새벽에 조금 늦게 알아도 될 진실과 마주했지. 눈을 살포시 뜨니 어둠 속 형체가 말을 걸어왔었다. "이불 덮고 더 자. 아직 새벽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아버지였다. 새로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몽사몽 잠에서 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물 포장을 뜯었고 거기엔 가지고 싶었던 축구공이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선물을 받는 건 마음이 포근해져서 한참 동안이나 축구공을 안고 있었다. 벅찬 마음과는 별개로 그 새벽에 말을 건 사람이 아버지인지 아닌지 궁금했지만 산타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입술을 꾹꾹 눌렀었다. 그리고 그 해가 성탄 선물의 마지막 해였다. 10살이면 이제 장난감은 놓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엄한 당부가 있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직 산타 할아버지를 믿고 있다고 하면 어수룩한 아이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살이 되고 나서부턴 부모님께 뭘 사고 싶은지 말을 하고 성탄절 전날이나 당일에 서점이나 문구점으로 가서 보고 싶었던 책을 샀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는 희미해져갔지만 성탄절은 곧 사고픈 걸 살 수 있는 날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져서 다른 의미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는 꼭 성탄절이라 아니라도 마음에 채울 것이 필요하거나, 큰 과업을 끝낸 뒤에는 나 자신에게 필요한 걸 사곤 한다. 이걸로 어른이 되었다고 하긴 뭣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변함이 없는 건 있다.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행을 가기 전이나 혹은 가슴 벅찬 일이 있으면, 그 전날 일찍 잠에 들어서 다음날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내가 사고 싶었던 걸 사거나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거나 받고 싶었던 연락을 받거나. 어쩌면 지금의 버릇은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가 들인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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