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안동에서 직장을 다닐 때 일을 잠깐 쉬던 시기가 있었다. 두달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그때 나는 다이어트를 빌미로 편도 차비와 휴대폰 배터리 2개 그리고 이어폰을 챙겨들고 안동 모처에 있는 운전면허학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는 집까지 걸어왔었다. 대략 15km의 거리였는데 헬스장을 등록하기에는 여유있지도 않았을 때였고, 무엇보다 살을 빼면 좀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을 했었다. 무지하게 시도를 했었지만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짧은 시간에 꽤나 많이 감량을 해서 회사 재계약 후 그전의 내 모습을 알던 직원분들이 다이어트를 어떻게 했냐며 많이 물어보곤 했었다. 그때 직원분들께 했던 대답이 이랬다.
내가 원체 생각이 많은 스타일인건 주변에서 알고 있었기에 두루뭉술한 저 대답에 대부분 그럴 수 있지라며 수긍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사실 생각 덜어내기의 목적도 없잖아 있었기에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생각이 많아지거나 복잡한 일이 생기면 걸음부터 떼고 본다. 생각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 날엔 잠을 설치는 건 당연한 거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시간이 되면 꼭 걸을 채비를 하고 나가곤 한다. 너무 덥거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바쁜 시기가 지나고 마음 속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잡음이 생기곤 한다. 내가 일으킨 요인도 있고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주변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이다. 사실 남탓을 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고 내 탓을 하자면 끝없이 동굴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전자의 경우 내 잘못은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을 중점으로 보게 되는데, 내가 지닌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댄다는 건 무척이나 가혹한 일이다. 만에 하나 비슷한 경우가 반복되는 경우 끝없이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유연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상대방의 비위, 기준에 맞춰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이 또한 가슴앓이를 제법 하게 된다. 마음을 내려놓는다 해서 모든 걸 이해하며 내려놓는 게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내려놓음이기에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잦아진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든 중심점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이리라.
요즘엔 걸음을 떼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 내 같이 운동하는 분들이 있어서 하루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걷는 것도 있지만, 회사 일이 늘 그렇듯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기에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늘 궁리하곤 한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난 늘 그랬듯 걷는 것을 택했다. 약속이 있거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은 날은 제외하고서 어지간하면 걷는 편인데, 글을 쓰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과는 달리 땀을 내면서 걷기에만 집중함으로 풀어내는 스트레스 해소도 상당하다. 언제까지 이 버릇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걷기가 내게 유효한 것으로 작용을 하는 걸 보면 괜찮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을 덜어내는 연습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았지만 생각보다 내가 그 방법은 일찍 찾아낸 걸 수도 있다. 후에 다른 것들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라면 내게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가져다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나는 꽤나 괜찮은 버릇을 들인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