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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

by 권씀

새해가 되고 연초에 사건 또는 사고가 생긴 뒤,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한다. “이왕 나쁜 일을 겪을 거라면 더 큰일보단 작은 일로 때우는 것이 낫다"거나 "중요한 일을 어그러뜨리기 전에 나쁜 일을 미리 겪는다"는 의미로 액땜을 치뤘다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불운을 예방접종한다는 말인셈이다.


오늘은 출장을 다녀오다 잠깐 들른 곳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가다 정차 중이었는데 앞차가 갑자기 후진을 하는 바람에 피할 새도 없이 앞차와 부딪혔다. 앞차 운전자의 대처가 너무 아쉬웠는데 회사동료와 나를 향해 “괜찮아 보이네요.”, “그쪽 차는 아무렇지도 않네요.”, “후진하는 줄도 몰랐어요.” 등의 말이었다. 물론 사고가 나서 당황했을 수는 있지만 내려서 사과의 제스츄어는 전혀 없었기에 되려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고를 내셨으면 “괜찮으세요?”가 먼저 아니냐고. 회사에는 바로 보고를 했고 조치는 즉시 이루어졌기에 다행이었지만, 끝내 앞차 운전자의 사과는 듣지 못했다.


작년 초 두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에 작년보다는 빠른 대처 행동을 할 수 있었고, 앞차 운전자에게 명확히 현 상황과 내 입장을 표명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일런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액땜이라면 액땜이려나.


살면서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 운전에 비유한다면, 내가 아무리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해도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은 늘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에 의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상황에 의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가 아직 11개월 정도 남은 시점, 오늘 있었던 사고가 다른 나쁜 일을 겪지 말라고 생긴 일이라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우선은 더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는 지금 이 시간, 오늘은 하늘 가까이 유난히 밝은 반달이 떠있다. 어제의 달은 어둠에 가려 어두웠지만 말이다. 달이 늘 밝지 않듯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것 아닐까. 내일은 오늘의 밝은 달을 보면서 더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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