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가 아님에도

by 권씀

삼재인가. 삼재가 아니면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계속 나 스스로 던지고 있다.


근래 한 달여간은 비포장길을 걷는 시간이었다. 비포장길 중에서도 고운 모래는 없고 자갈만 잔뜩 쌓인 그런 길. 굵게 보자면 두 가지 일인데 하나는 가족 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일이다. 전자는 그래도 매듭이 되어가고 있지만 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일이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산다는 게 삼재가 아님에도 좌충우돌일 때가 있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또 극복을 못 할 것도 아니기에 견디고 버텨내는데 가끔은 귀신에 씌었나 싶을 정도로 일이 꼬이곤 한다.




얼마 전 누나 결혼식이 있어서 그야말로 온 가족이 신경을 썼었다. 결혼식장이 서울이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가실 분들이 좀 계실 듯해서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가게 되었는데 가기로 한 어머니 지인 몇 분이 당일날 잠수를 타버려 출발 시간이 좀 늦어버렸다. 나는 그 전날 서울로 향했던 어머니께 변동 상황이 있다고 전화를 드렸고, 어머니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과정에서 그날 입어야 할 한복 저고리를 놓고 결혼식장에 가게 됐었다. 결혼식 시작 2시간 전에 인지를 해서 한복 저고리를 삼촌이 챙겨서 전해줘서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잠수를 탄 그분들은 오후 늦게서야 어머니께 전화와 문자로 본인들이 안 보이면 그냥 출발할 줄 알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주말의 서울이 워낙에 붐비고 각종 행사 및 집회가 많기에 빨리 가야 한다는 걸 버스 기사에서 여러 차례 고지를 했고 사전에 조율을 했으나, 버스 기사의 착오로 서울에 입성을 해서도 두 시간 동안 외곽 순환도로를 빙빙 돌게 되었다. 버스에 탑승한 인원이 스무 명 남짓이라 그리 많지 않았지만 평소 왕래가 잦았던 친지분들이 계셨기에 나도 친지분들도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스 기사는 느긋했고. 결국 중간에 내가 먼저 버스에서 내려서 식장으로 뛰어가게 됐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혼식 말미에 진행되는 가족사진은 간신히 찍을 수 있었다. 누나에게 불러주기로 한 축가는 부르지도 못했는데 온 가족들이 화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허탈함과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웃음도 울음도 사라진 가족 행사가 돼버렸다. 그래도 가족끼리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허심탄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을 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를 제외하고 부모님, 누나는 용띠, 원숭이띠, 쥐띠이고 올해는 그 세 개의 띠가 삼재에 드는 해이기에 다른 큰 일 생기지 말라고 액땜이 생긴 거라는 생각도 함께.




가족은 그래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고 보듬어 줄 수 있지만 사회인의 관계 특히 회사 사람과의 관계는 그리 쉽지가 않다. 세세하게 쓰자면 한도 끝도 없기에 굵은 것만 쓰자면, 신규 직원을 지난 3월에 채용을 하게 되었고 네 사람 중 한 사람을 지금 내가 속한 팀에 배정을 받게 되었다. 우리 쪽 일이 사람을 대할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문화재를 다뤄야 하기에 체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전문 지식 또한 함양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관련 전공자를 보다 많이 뽑으려 하는데 요즘 인력난이 심하다 보니 간혹 비전공자도 채용을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두 달 정도만 지나도 대개의 경우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더러 꼰대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리고 적응을 잘 못한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일을 열심히 한다면 좀 늦더라도 끌고 가겠지만 근래 여러 일이 있었다. 우리 팀의 신규 직원이 비전공자라 일을 함에 있어서 더딘 건 둘째치고 지시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에 대해 여러 차례 팀장님과 내가 차근차근 알려주곤 했는데 같은 부분을 거듭 가르치게 되다 보니 이 사람이 과연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를 하면서 알겠다고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업무를 알려줄 때 상냥하게 윽박지르지 말고 알려달라는 말을 했는데 회사에서 그런 걸 바라는 건 너무 낭만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왜 본인이 적응하려고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업무 외적으로 회사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걸 영업한다거나 늘 팀장님에게 업무 지적만 받는 것 같아 나랑 둘이 외근을 나갈 때는 부담을 안 주려고 했던 게 여지를 남긴 건지 내게 본인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도 골치가 아픈 일이 되었다. 내 선에서 정리할 것은 아니라 생각을 해서 팀장님께 업무 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이 되느냐도 문제인지라), 다른 애로사항을 보고하게 되었는데, 보고를 한 나에게 그 신규 직원이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나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문제를 삼으니 문제가 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난 매번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꼬이는 건가 싶기도 하는 마음이다. 친한 누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쯤 되면 살풀이 굿이라도 받아야 할까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




또 지나가면 허허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삼재가 아님에도 삼재 같다고 여겨지는 건 그냥 내 마음의 문제일까. 상황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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