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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Apr 25. 2024

우연의 만남 그리고, 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의 덜 마른 머리칼에서 바디 로션의 냄새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위잉 - 돌아가는 헤어드라이기 소리. 묘한 정적 속에 울리는 그 소리가 우리 사이를 채웠다. 그래 핸드폰이라도 보고 있어야 좀 낫겠지 싶어 멍하니 핸드폰을 집어드는데 그 모습을 그녀가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뭐해요? 뭐 볼 거 있어요?”


“아뇨, 좀 뭐 제가 숫기가 없어서 뭐 머리라도 말려드릴까 하다 이러구 있네요. 저 무슨 말 하는 거죠? 아하... 하하하.......”


“푸웁..!!”


풍선의 공기가 한순간에 빠지는 것처럼 그녀의 웃음이 터진다.


“이봐요. 거기 있지 말구 일루 와요. 머리 말려준다면서요.”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드라이기를 건넸다.


“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헤헤..”


나는 드라이기를 건네받고서 따뜻한 바람으로 살랑 살랑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우리 이상하지 않아요? 오늘 처음 봤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둘이 엄한데 온 거요. 나 그런 여자 아닌데 말예요. ”


“네. 뭐 저도 엄한 집에서 자란지라..저도 그런 남자 아녜요. 어쩌다보니 저도 머리카락을 말려드리고 있네요. 나름 뭐 엄해요. 보수적이고. 오늘은 좀 신기하네요. 처음 본 사이인데.”


“어색한가 봐요.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흐흐.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했네요. 그쪽 이름은 뭐예요?”


“그쪽이라는 이름은 아니구 영우예요. 이영우. 초성이 ㅇㅇㅇ이죠. 나이는 서른넷이구요. 그쪽은요?”


“킄크..이름 소개가 특이해요. 저도 그쪽이 아니고 안설화예요. 겨울에도 피는 꽃이라고 아빠가 지어준 이름인데 놀림을 많이 받아서 바꿀까도 생각을 했어요. 나이는 서른 하나구요.”


“아. 그렇구나. 이름 예쁜데 왜요? 제 이름도 꽃이랑 연관이 있거든요. 꽃부리 영에, 비 우..꽃잎 비라는 뜻이예요.”


“와. 이름 예쁘네요. 머리는 이제 그만 말려도 될 것 같은데요??흐흐 우리 그냥 이야기나 나눠요. 우리가 어쩌다 이런 엄한데 와있는지 말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친구들의 연애 축하 피로연에 왔다가 눈이 맞은 거다. 술에 취해서 몽롱한 눈을 하고서 이리 저리 둘러보다 텔레파시가 맞은 상황이었다. 스무살을 갓 넘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삼십대 초반이면 탐구 욕구도 강한 나이가 아닌가.


“음..그러니까 우리가 술에 취해 서로의 눈이 마음에 들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거죠?”


“그...렇죠..?? 근데 슬슬 술이 깨는 것 같은데 나갈까요?”


“우리 들어올 때 얼마 냈죠? 영수증 이리 줘봐요. 으흠..5만원냈구나..대실로 끊지 그랬어요. 대실은 2만원인데.”


“그럼.. 환불을 해야...”


“잠깐!!에이 남자가 뭐 그래요. 칼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얼른 씻어요. 편의점에 가서 술 더 사오죠. 술 깨면 서로 더 부끄러워질 것 같은데."


“아..네..씻을게요. 그럼..” 하룻밤 잠자리에 남녀의 구분은 없다지만,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들어올 때 술을 사올걸 싶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받으며 나는 한참을 그렇게 쓸데없이 멍 때리다 나왔다.


“어? 와인이네요? 편의점에 이런 것도 파는가 봐요? 그쪽한테 미안해서 어쩌죠..와인값이 더 비쌀텐데..”


“됐거든요. 그리고 난 그쪽이 아니라 설화라구요. 거참. 이리 와요. 고오오급 술로다가 분위기나 잡읍시다.”


“그쪽 아니 설화씨는 이름도 얼굴도 참 예쁜 것 같아요. 헤헤헤”


“지금 술 마셔서 그런 거죠? 에이 안속아. 남자들 다 그런 말 빈 말인거 다 알아요. 어떻게든 꼬실려구 하는 거. 만만한 말이 예쁘다 그거지 뭐.”


“으아니. 지..지인짠데?? 봐요. 설화씨. 나 혀는 꼬여도 설화씨 이름 기억하고 있구... 눈빛도 싸라있거덩요?? 봐봐요. 흡....!!!!!”


말을 쏟아내는 와중에 그녀의 입술이 포개져서 와인이 입술로 주르륵 새버렸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어쩌지 그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접었다. 그녀의 입술이 내 숨결이랑 맞닿아 있는데 어떠하랴. 한참을 그렇게 입술을 포개던 둘은 입술을 떼고 조심스레 옷을 벗었다. 몸의 한 부분도 놓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그야말로 본능에 집중하고 있었다. 텔레파시는 얼추 통했으니 이제 몸에 집중할 시간이라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로 들어 안아 올렸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술병 탓에 하마터면 자빠질뻔 했지만 다행이었다. 둘이 넘어져서 다치면 거사(?)도 못 치르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겠지. 그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침대에 그녀를 뉘였다.


“저, 그럼...시작을...”


“아이 참 엉뚱하네요. 그쪽 참...부끄러우니까 얼른 와요.”


어정쩡하게 걸친 옷은 벗고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마침내 만리장성 같은 침대로 입성을 했다!! 아까 전엔 뺏긴 그 입술을 이제 반대로 포개었다. 빛이 들지 않은, 적막 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녀와 내 숨소리만이 거칠게 오갔다.


입맞춤이라는 예쁜 말보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이 어울릴까. 나는 그녀와 입맞춤을 하며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 이럴 때는 그냥 혀의 교미라고 하는 게 더 맞겠군. 아까 전 한참을 했던 그 혀의 교미를 다시 하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저 본능에 이끌려 둘의 혀가 서로의 입 안에 노닐고, 엔돌핀 가득한 타액이 오갔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서로의 입을 탐하다 이젠 몸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입에서 턱으로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꼽으로, 그리고 배꼽의 아래쪽의 은밀한 부분까지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몸을 샅샅이 보고 느꼈다. 어느새 아랫도리는 뻐근해질 만큼 무거워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렇다. 몸은 참 정직했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것을 (실상은 수많은 영상물을 접하면서 간접 경험을 해왔지만!)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 손을 대고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내 다리와 그녀의 다리를 어찌 해야 하나 싶어 조심스레 젖히고 심호흡을 하며 서두르지 말자. 상냥하게. 상냥하게. 다시 주문을 외웠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살포시 상냥하게 몸을 포갰다. 그렇게 둘의 가장 은밀한 부분은 마주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친구놈들이 그렇게 떠벌리던 좌삼삼 우삼삼은커녕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따뜻하다는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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