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서류 결재도 웹으로 하고 문서도 타이핑으로만 작성한다. 손끝이 닿을 틈 없이 화면 속에서만 글자가 오가니 빠르고 편리하다는 만족감은 있지만, 정작 글씨를 직접 쓰는 일은 점점 낯설어졌다. 오랜만에 펜을 잡아보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익숙한 동작 같은데, 막상 종이에 남겨지는 글씨는 어딘가 어색하고 서툴다.
예전에는 친구와 주고받던 손편지가 하루의 작은 설렘이었고,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이는 순간조차 하나의 의식처럼 소중했다. 편지가 도착하기까지의 기다림은 길었지만,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마음은 자라났고 답장을 여는 순간의 떨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손편지를 쓰려 해도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잠시 멈칫하게 된다. 펜팔이라는 말조차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 낯설지 않았던 풍경들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시절의 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삐뚤빼뚤한 글자에도 온기가 스며 있었고, 서툰 표현조차 진심으로 다가왔다. 종이 위에 번진 잉크는 글씨체마다 다른 체온을 지니고 있었고, 펼쳐보는 순간 그 사람의 숨결과 마음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낡은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면, 잊고 있던 얼굴과 목소리가 문득 살아나듯 다가오곤 한다.
펜을 안 쓴지 꽤 됐다. 그래서인지 가끔 펜을 쥘 때면 손끝은 자꾸만 떨리고, 글자는 금세 삐뚤어져 버린다. 그러나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지는 과정은 어쩌면 삶이 흘러간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변하는 세월 속에서 낯섦이 찾아온다는 건, 여전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또 다른 증명일 테다.
다시 펜을 들어 편지지를 펼쳐본다. 삐뚤어진 글씨 사이로 오래 잊고 있던 나의 숨결이 번져나가고, 더듬더듬 이어지는 문장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작은 온기가 된다. 느린 손길로 한 장의 편지를 다 써 내려간 순간, 나는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