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모래를 붓는 밤

by 권씀

시간을 벼려낸 주전자는

늘 같은 쪽으로 기울어 있다


흘러내리는 것은

일종의 액체처럼 보이지만

손끝에는 메마름이 닿는다


병 안에 담긴 세계는

이미 제 무게를 잃은 지 오래

행성은 천천히 돌고

산은 낮아진 쪽을 향해

조용히 흘러간다


시간은 바스라져 모래가 되었고

결코 머무르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닿는 자리마다 조금씩 부스러진다


그렇게 남은 것은

채워진 흔적이 아니라

기울어 있던 시간의 각도뿐


밤은 아직 주전자를 돌려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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