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기린의 방식

by 권씀

기린은 하늘 가까이에서 먹고 살지만

잠은 늘 가장 낮은 곳에 남긴다


물을 마실 때면 다리를 벌려

스스로를 무너뜨린 자세로

세상 앞에 선다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살기 위해선 고개를 꺾는 법을 배웠다


높다는 건 늘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고

멀리 본다는 건 늘 먼저 아는 일도 아니란 걸

기린은 태어난 후 몸으로 배웠다


기린의 심장은 머리까지 피를 올리기 위해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버틴다


그래서 쉽게 뛰지 않고

도망칠 때조차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린은 그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 있음은

늘 한 번쯤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어서


사람도 그렇다

높이 서 있을수록 자주 굽혀야 하고

많이 버틸수록 말은 줄어든다


나는 아직

다리를 벌린 채

물을 마시는 중이다


누군가의 시선보다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을 더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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