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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Jul 06. 2019

깔딱 장마

오래된 지하상가에는 형광등이 깜빡인다. 바람 하나 찾아들지 않는 지하에는 언제나 눅눅한 공기가 머무른다. 여름에는 서늘함이 있지만 비라도 내린 후라면 이내 눅눅해지고야 만다. 눅눅한 공기가 온 사방에 흩어지면 부채를 펼치고서 쫓아내는 시늉을 해본다. 언제 달려들지 모를 그 눅눅함이 무섭기보다 성가신 탓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감싸는 통에 겨우 떨친다 싶을 때, 공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영락없이 몸과 마음이 눅눅해지기 때문이다. 압력밥솥 아래 눌어붙은 밥은 물을 부어 끓이면 떨어지기라도 하지.

장마철에 비구경을 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분명 공기는 지상에 잔뜩 내려앉아 꿉꿉함과 눅눅함을 머금고 있는데, 볕은 따사로움을 넘어 따갑기 그지없다. 밖을 쏘다니다 집에 들어와 온통 젖어버린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리노라면 어느새 몸에 물기가 한가득이다. 분명히 방금 전 씻고 닦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비구경 어려운 이런 장마는 마른 장마라는 건조한 명칭보단 깔딱 장마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비가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깔딱깔딱. 베갯잇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본다. 깔딱거리는 고갯짓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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