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연인에게

by 권씀

사계절이 있던 곳엔 점차 계절의 간격이 달라졌다. 겨울의 차가움과 여름의 싱그러움은 점점 길어져 건조함과 습함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편가르는 걸 좋아하는 것들에게 이 계절마저 건기와 우기로 끝내 나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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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아. 사랑하는 나의 연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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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숨 쉴 곳이 봄과 가을이라면 난 그것들을 양쪽 손에 쥐고서 있는 힘껏 늘려 기어코 너의 안식처로 만들었을텐데. 좁아진 계절엔 내 발 디딜 곳 하나 없어 널 끌어안고 우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구름이 또다시 몰려들면 난 널 내 품에 안고 저 빗줄기 안으로 뛰어가겠지. 한참을 뛰어 쌔액 쌔액거리는 네 숨결에 나는 또 마음이 무너지겠지. 비에 젖어 굽이진 네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내 거친 손으로 곱게 넘겨주면 그제서야 네 거친 숨이 잦아들까. 세상엔 우기가 한창이고 유기된 우리 둘은 바들바들 떨며 비를 맞고 있지. 세상을 피해 우리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이 계절이 온통 젖어도 나는 괜찮아. 난데없이 물벼락 맞은 꽃이 어쩌면 우리와 닮았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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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아. 사랑하는 나의 연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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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치면 쩍쩍 갈라질 이 세상에 던져진 너와 나의 사랑에 불화살이 당겨져 온통 타버린다 해도 잡은 손을 놓지는 말자꾸나. 우리에게 검은 하늘이 가차없이 드리워도 사랑엔 종말이 없을 테니. 맘껏 사랑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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