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소화가 어려운 밥을 짓는다

by 권씀

왕겨를 벗겨내지 않은 알곡으로 밥을 짓는다
물에 불리지 않고 대충 씻어낸 그런 알곡

물은 자작하게 채우지만 설익은 밥을 짓진 않는다

소화가 어려운 밥을 지어본다
잘 지은 밥을 먹는 건 나도 좋지만
누군가에겐 쉽게 뺏어먹을 수 있는 그런 밥이니까

채 정돈되지 않은 낱말을 펼쳐놓고 골라본다

글이 좀 텁텁하고 까끌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매끈한 문장 여럿을 놓고 견주어보고 나열하다
그 누군가에게 알짜배기를 뺏기는 것보단 나으니까

짓긴 어려운데 슬쩍하긴 쉬운 글의 시대
결국 내 밥그릇은 내가 지켜야만 하는 그런 시대

오늘도 소화가 어려운 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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