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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여름에는

by 권씀

이맘때 여름, 성서 신당동 용식이 할배 집에선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었지. 밥그릇에 달빛이 떨어지면 밥과 같이 비벼서 달빛도 먹었어. 여름에는 가마솥 밥 지을 때 야트막한 스뎅 그릇 슬쩍 넣고 그 안에 옥수수 찌고 감자 삶아서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먹었지. 감자에 달빛이 스며들면 감자도 달빛도 같이 베어 먹었지. 옥수수 알갱이 야문 것들은 씹다 말고 후두둑 뱉어 야단을 맞았어. 음식 귀한 줄 모른다고 말이야.


용식이 할배 집은 있을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집이었어. 손수 흙을 밟고 개어 만든 흙담 안으로는 네칸 살림집에 양 옆으론 서롤 빼닮은 기다란 사랑채가 있었지. 마당 너른 그 집은 옛날집 같으면서도 촌스럽진 않았어. 정짓간에 있는 두 아궁이와 바깥에 있는 아궁이는 용식이 할배네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는 객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는 것 같았어.


이맘때 여름에는 용식이 할배가 특유의 헛헛너털웃음을 지으며 커다란 대문간 앞에 서있었어. 그때쯤이었을 거야. 그 동네에 통닭 가게가 생긴 게. 용식이 할배는 양손에 갓 튀긴 통닭 봉지를 들구선 흰 고무신, 삼베옷 차림으로 있었지. 열두자식 중 곁에 사는 자식은 영숙이네 뿐이라 늘 보면서도 애틋했나봐. 다른 자식들 가고 나서야 그 통닭을 사와선 영숙이네 애들을 손수 살을 발라가며 멕였으니까. 애들이 대로 안 먹은 닭뼈가 그렇게 아까워서 뼈까지 와작와작 먹었더랬어.


하루종일 매미 잡고 잠자리 잡고나면 저녁 즘에 대문을 열고 들어온 실바람은 달콤한 잠을 자게 해줬고, 모기 쫓는 화로 연기 흔들 때쯤 할매 무릎 베고 곤히 잠들면, 용식이 할배는 영숙이네 사는 형편을 슬쩍 물어봤더랬어. 애들 아부지는 요새 일을 잘 하는지, 쌀은 안 떨어졌는지 말이야.


기와지붕 흐르던 달빛 소리 없이 다가오면 용식이 할배는 한숨 섞인 걱정을 저멀리 밀어두고 자고 있는 애들을 토닥여줬어. 무럭무럭 걱정없이 잘 자라고 말이야. 그 덕에 아이들은 달빛을 입고 할배, 할매도 모르는 밤하늘을 밤새도록 헤엄쳐 다녔어. 이맘때 여름에는 성서 신당동 용식이 할배네 기왓집이 생각이 나. 어른들의 걱정을 아이들이 어렴풋이 알았던 그 곳. 나의 외갓집과 외할아버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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