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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by 권씀

밤의 벌어진 입속에 넣은 손목이 시리다. 캄캄한 구멍이 해구처럼 깊다. 파리한 손목에 새하얀 이불보가 수초처럼 감기고, 소금처럼 자글자글 구르던 별들이 손톱에 와 박힌다. 정수리를 떨어뜨리며 고꾸라지는 달을 보며 잠든다. 소리 없이도 깊은 잠을 내리치는 꿈결은 밤의 잇몸에 자잘한 흠집들을 만든다. 밤의 내피는 연분홍색이다. 무방비 상태인 속살은 꾹꾹 누르는 손톱자국들을 무심히 받아낸다. 작살에 꽂힌 채 잠든 고래는 바닥에 몸을 눕히고 비트는데 그 위로 꽃덩쿨이 녀석의 몸을 휘감는다. 고요는 아득히도 멀리 있는데 요란한 건 이토록이나 화사하지. 심해의 바위 같은 고요, 침대 밖으로 늘어뜨린 손목은 암막커튼자락에 걸린 채 흠칫한다. 발끝으로 걸어가는 건가. 이 밤은. 뭔지 모를 소름에 늘어뜨린 손목을 황급히 거두는데 여전히 밤의 벌어진 입속을 다 알 수 없다.


밤이면 누구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는 걸까.


바닥에 떨어뜨린 추억의 두루마리 속에서 굴러가던 만월은 달빛에 젖은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다. 길 위에 쓰러진 별들을 뒤로 하고 푸른 사춘기 속에서 울음 울던 기적소리 낡은 이정표와 함께 펼쳐진다. 꾸역꾸역 초연한 유년의 굴레는 쳇바퀴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도저히 방향을 알 수 없는 밤마다 눅눅해진 고향 길이 마르며 때늦은 추위를 느끼던 나의 밤하늘 위로 둥근 자국이 지나간다.


꽃덩쿨이 다시 고래를 휘감는다. 헐렁헐렁하면서도 휘휘거리면서도 헛헛하게. 폐부에 깊이 박힌 눈빛이 서럽도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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