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할 수 없기에 기도했다.
"너무 깊은 절망에 빠지면 주위에 날 도와줄 사람을 잊는다."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마음을 때렸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도를 아십니까' 사람들, NGO 단체 사람들...
그들의 접근을 사람들이 피하듯, 나는 피할 기운도 없었고, 그들을 마주치면 눈물이 먼저 터졌다.
처음엔 그들도 날 토닥이며 물도 건넸지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나중엔 그들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울었다.
휴지로 닦고 또 닦아 헐 정도로, 눈코입이 다 무너질 만큼.
그러다 무심코 시선이 머문 곳, 십자가.
마침 나의 가장 큰 조력자인 친구가 교회에 같이 가보자고 권유하던 시점이었다.
‘신앙은 이렇게 시작되는 걸까?’
나는 거의 20년 만에, 스스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날은 부활절이었다.
아침부터 예배가 네 번이나 진행된다고 했다.
나는 멍하니,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헌금으로 5만 원을 냈다.
직업도, 수입도 없는 상황.
이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 내게는 큰돈이었지만
지갑에 오직 그 지폐 한 장뿐이었고,
그 자리에서 “거슬러 주세요”라 말할 수는 없었다.
예배당 안은 적막했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여전히 요동쳤다.
물을 삼킬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던 상태, 내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청할수도 없는 수면부족의 상태에서
눈도 너무 오래 떠있어서 충혈이 심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안에서 주어지는 공식적인 기도시간 그리고
그 공간에 울려 퍼지는 찬송가는
잠시 눈을 감고 쉴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 때마침 이날은 부활절 예배를 하는 날이였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님.
‘이건 내게 주는 메시지인가?’
‘죽어버린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오늘 이 우연을 만든 걸까?’
‘신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날 교회로 다시 부르기 위해 이런 고통을 허락한 걸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끝엔 다시 교회를 찾게 만드는 끌림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우린 모두 죄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울 수 있었다.
그렇게 교회를 다시 가게 되었다. 캐나다에선 church라고 되어 있는 곳이 성당이여서
성당을 가게 되었다. 나에겐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공간과 분위기가 주는 평온함이 필요했다.
도움을 주는 건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무언가 더 깊고, 영적인 존재가 나를 이끌어주는 걸지도 모른다는 확신.
그날 처음 교회를 찾았던 나는,
잠시나마 남편을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과거형이냐고 묻는다면…
용서는, 적어도 지금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잊고 그냥 같이 살아가는 것’이 용서의 방식이라면…
나의 기도
신이 계시다면,
많이 바쁘시겠지만
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내 슬픔에도
잠시 눈길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들 때만 신을 찾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죄 많은 인간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해 주세요.
저도 제 잘못, 벌 받을게요.
하지만…
그 사람들 둘은,
꼭 살아 있을 때 벌 받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