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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Feb 14. 2020

3. 내가 결혼한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무모하니까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지만, 상대는 있을 경우 상대에게는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라는 게 붙잡아 둘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상대의 결혼 상대자를 찾는 시간을 내가 뺏는 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약간의 죄책감에 연애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또 연애는 하고 싶은 그런 이기심에 소개팅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이 같지 않아 그 시간을 내가 놓아버리거나, 상대가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 연애를 쉬었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도 했고 나는 내 삶을 살아내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을 때라서 그랬다.


그러다 문득 장난 같은 친구의 제안에 소개팅을 하게 되었고,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경제력, 직업, 스펙 이런 것들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 내 앞에 있는 사람만이 중요했다. 이 사람이 내 말을 얼마나 경청하는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말과 행동에 진실함이 있는지와 같이 그냥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기본적인 것들만이 보였다. 


만약 내가 결혼을 전제로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의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나는 100% 놓쳤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나에게 처음 만나자고 하면서 함께 고백한 것이 진행하던 사업을 접으며 많은 빚이 생겼고, 그로 인해 개인회생 중이라는 고백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이 뭔지도 모르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에 그 무게를 몰랐고, 또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그 무게를 내가 짊어져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냥 가벼웠다. 그가 조심스럽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고 나는 "그게 뭔지도 잘 몰라서 잘 모르겠네."라고 답했다. 연애를 시작했다.


장점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일단 말이 잘 통하고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내가 직장의 일을 넋두리를 하면 정확히 잘 몰라도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었다. 또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전 사업체도 접을 때가 있었는데 함께 일하던 분이 이 사람의 차를 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서 그 차를 그대로 주고 왔다고 했다. 또 마음이 여리고 성격은 불 같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성격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피해를 입거나 다치면 그 상대에게는 그런 성격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나에게는 한 번도 조심스럽지 않게 대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사람에 대한 경계가 명확했고, 가족과 나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 탓에 연애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가끔 내가 투정 부리고 쏘아붙여도 '내가 고칠게, 내가 맞출게.' 해주다 보니 싸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거나 나를 기만하지 않았고 진실과 진심을 말해주었다. 


이 사람이랑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 생각 나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생의 바닥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강한 모습을 믿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약간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경제적으로 전혀 부족함 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사업을 접게 되고 지금 통장에 돈 백만 원 없을 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기운이 없거나 기세가 죽지 않았고, 늘 당당하고 떳떳했다. 개인회생의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지인에게 빌린 돈은 꾸준히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아나갔다. 그 빚은 개인회생에서 제외하고 정말 갚을 능력이 없거나, 이자가 원금을 넘은 캐피털이나 대부업체의 금액만 신청했다. 이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을 텐데 주저앉아있기는커녕 평생 해본 적 없는 힘들일들도 가리지 않고 명절에 택배 상하차까지 하며 그 돈을 갚아나갔다.


두 번째는 내 안에서 생겨난 책임감이었다. 이 사람의 개인회생의 고백으로 시작한 연애에 대한 책임이었다. 모르고 이 사람이 나를 속였다면 밝혀졌을 때 이미 끝을 냈겠지만, 이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그것을 다 알고 이 관계를 시작했다. 나와 연애를 시작하고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휴대폰 착발신까지 정지되었을 때, 나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겠구나 하고 이 사람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때, 살면서 가져보지 못했던 죄책감이 들었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 사람이 덜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인생의 나락에서 나는 이별까지 보태주었구나라고 생각하니 견디기가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애를 시작했고 이 사람은 더 노력하고 쌓아나가서 조금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럼 사람의 손을 두 번 놓는 일은 이미 다시 잡았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 번째는 나를 나로 인정해주고 북돋아 주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기심이 있어서 일단 내가 풍요로워지면 거기서 남는 것을 남에게 베풀 수는 있지만, 자신을 깎아가며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그러했고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무엇이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북돋아 주고 응원해주었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다른 사람보다 크고 넓은 사람이었다. 그 깊이가 나는 몹시도 좋았다.


네 번째는 결국은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하고 싶은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이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금은 무모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결정을 했다. 내가 결혼을 인생에서 덜어내었던 것은 그냥 결혼이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인생을 보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믿음이 없었고, 확신이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새로운 길을 가고 싶지 않았던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출산 계획도 당연히 없었던 내가 어느 날 그가 조용히 TV를 보고 있는 뒷모습을 보면서 '아, 저 사람 옆에 저 사람이랑 꼭 닮은 아이가 있다면 참 귀엽겠다.'란 생각이 들었을 때 스스로도 너무 놀랐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결혼 상대를 찾은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게 되었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어떤 조건도 상황도 함께 감당해야 할 무엇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람 하나 보고 시작한 관계였기 때문에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조건, 경제력, 학력, 외모를 먼저 따졌다면 나는 내 인생을 함께할 귀한 사람을 놓치지 않았을까?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고, 나머지는 함께 감당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무모하니까, 결혼을 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결혼 후에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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