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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Feb 21. 2020

4.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응

네가 결혼한다고?

결혼에 영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결혼한다고 선포했다. 그게 바로 나다. 


결혼은 뒷전인 것처럼 주말마다 퇴근을 공항으로 하던 때도 있었으니, 회사에서의 반응도 축하보다는 '너 이제 어떻게 살래?'가 더 많은 반응이었다.


"아이고, 이제 너의 시대도 다 갔구나!"

"너도 여행은 다 갔네!"


그런 반면 또 결혼을 내심 기다리던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 친한 언니가 결혼할 때 결혼 선물로 전기밥솥을 선물해줬는데, 형부가 늘 나 밥솥 도대체 언제 사주냐고, 언제 갚아주냐고 벼르고 있던 차에 "와아! 드디어 밥솥 갚을 수 있게 됐네." 하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뭐 이만하면 모두의 축복 속에 하는 결혼인 것 같은데, 아닌가? 




특히 엄마에게는 연애 때부터 내가 이런 사람과 만나고 있다고 틈틈이 이야기를 해 두었던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러다가 얘 덜컥 결혼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는 티 내지 않았지만,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런 조건만 보고 반대하기에는 나중에 둘이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상처만 주는 게 아닐까 하고 마음속으로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고 했다. 또 연애만 하다 말 거라면 또 괜한 분란만 만들 뿐이고, 또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면 내 자식 가슴에 못 박는 격이라 엄마는 만나라 마라 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나중에 엄마가 말하기를 "네가 네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했고, 그 길을 갈 때마다 그 길이 옳았고, 나는 나의 딸의 선택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지금은 엄마도 "너를 믿고 기다리길 잘했다. 내 예쁜 사위!" 하신다. 아빠는 그저 그런 엄마의 말을 조용히 듣고 끄덕끄덕 하신다. 


남편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부모님께서 연애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하고 있기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편이 "결혼할 사람이 있습니다." 하고 말문을 꺼냈을 때 "너한테 시집온다는 사람이 있다고? 조금 이상한 애 아니냐?"라고 해서 나의 상황을 다 설명하면 "아니 근데 왜 그 아이는 너를 만난다고 하니?"라고 하셨다. 그때를 회상하며 남편은 진짜 다 자기편은 하나도 없었다고 돌이킨다. 지금도 시부모님은 주변의 지인을 만나거나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제가 너무 팔불출 같지만, 처음에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상한 사람을 데려와서 결혼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런 며느리를 데리고 왔지 뭐예요?"라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를 소개하신다.  시부모님은 결혼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더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신다. 늘 "상황이 나아지면 더 좋은 거 해줄게, 더 예쁜 거 해줄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런 마음이 지금도 너무 충분한데 부족함이 없는데, 아주 작은 것을 드려도  '너희 먼저 해라. 우리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저 너희만 잘 살면 된다.' 하신다. 늘 두배 세배로 주시면서 말이다.


결혼 전 시누이는 어느 날 문득 남편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하는 말이 있잖아. 그럼 언니는 전생에 나라를 팔았나라는 생각이 드네." 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한참을 웃었는데, 지금도 가끔 우리 둘이 말할 때 남편은 나라를 구한 사람이고, 나는 나라를 판 사람이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나라면 절대 이런 상황에서 오빠랑 결혼 못할 것 같아. 언니가 대단해. 그러니까 오빠가 잘해."라고 얘기했다고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시누이도 좋은 게 있으면 카톡으로 불쑥 사진을 보내주고, "저 할 건데, 언니도 할래요?"라고 묻는다. 경상도 여자라 전형적인 무뚝뚝한 말투인데,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너무 예쁘다. 마음적으로 더 의지하고 많이 물어보게 된다. 


결혼 준비하면서 몇 번은 울었는데, 속상하고 힘들어서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이 되지 않아서 양가 부모님을 똑같이 챙기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늘 시부모님이 "친정부모님부터 챙겨라."라고 해주실 때마다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죄송한데, 그걸 부모님이 알게 되시고, 그 와중에 내 생각부터 해주시는 마음이 너무 벅차고 죄송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예복도 친정아버지만, 어머님들 가방도 친정어머니만 사드렸다. 그 과정에서 "양가에 똑같이 해드리고 싶다, 해드릴 수 없는 형편이면 양가 모두 해드리지 않는 게 맞다."라고 설득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부탁하셨다가, 협박하셨다가, 명령이라고 하시기도 하시고 끊임없이 설득하셨고 나도 결국은 그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혼반지도 그전에 나누어 낀 커플링이 있어서 생략하려고 했는데, 시부모님께서 부르셔서 가니 "결혼식장에서 너희가 끼던 반지 나누어 끼는 모습은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볼 수가 없구나.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반지는 꼭 해주고 싶다."하시고 맞춰주셨다. 반지를 고를 때도 남편과 내 취향이 달라서 티격태격하면 "결혼반지는 무조건 신부가 마음에 드는 걸로 하는 거야. 너는 가만히 있어라." 하시면서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저희 두 사람, 결혼하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축복해주시고, 아껴주셨다. 그 과정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나를 배려해주시는 마음들로 정말 매 순간 모든 결정을 행복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모든 결정을 할 때마다 '나 참 결혼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만으로도 충만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가족들의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졌다. 


나는 나 혼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 이상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결혼 준비하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느끼고 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고, 나를 배려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그 이상을 바란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살면서 인생의 가치를 돈에 두어본 적도 없다. 돈은 수단일 뿐이고,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니까. 그게 결고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돈은 어차피 나도 없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이 왜 조건이 돼야 할까. 정말 최악의 상황이 와서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면, 가능할까?'까지 생각해봤다. 결론은 가능하다였다. 나와 같은 직급에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외벌이로 아내와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집도 있으니까. 인생을 허영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너희는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난 것 같다."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축복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지금도 축복 속에 살고 있고, 이 축복이 미래의 우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그런 결혼을 했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감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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