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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Mar 02. 2020

이 시국에 입원이라니

서러운 입원 살이

2020. 02. 26.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두통이 너무 심해서 겨우 출근은 했지만, 오전 내내 쓰러져 있다가 오후 반가를 썼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서 일단 내일 연차까지 미리 써두고 몸의 상태를 봐서 다시 연락드리겠다 하고 퇴근했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데 몸이 너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열이라도 잴 수 있으면 '아, 내가 열이 나는구나, 아픈 거구나.' 할 텐데 집에 체온계가 없는데 내 열기에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열이라도 재보자는 심산으로 마스크를 챙겨하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호흡기 증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발열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 발열 증상이 있는데, 병원에 방문해도 될까요?"

"최근 2주간 외국에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오."

"최근 2주간 대구 경북지역에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오."

"혹시 특정 종교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오."

"너무 힘드시면 방문하세요."


그제야 병원에 방문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챙기고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통과의례처럼 열부터 채기 시작했다.

"8도 7부입니다. 열이 많이 나시네요, 일단 외투부터 벗으셔야겠어요."

열이 나니 정신이 혼미해져 잠시 주춤거리고 있자 다시 한번 외부를 벗으라며 간호사가 몸짓으로 이야기했다.

"아 네. 열이 나니까 정신이 없네요."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데, 발열 증상은 심한데 인후염도 없고 갸웃거리다가

"열감기인 것 같습니다. 일단 약 처방해드릴 테니 드시고, 호전되지 않으면 저희 병원에 전화 주세요."

"고열 증상이 있는데, 혹시 독감 같은 것은 아닐까요?"

"그럼 독감 검사도 해볼까요? 요즘 독감이 유행은 아니라서"

심드렁하게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독감 검사를 진행했다.

"독감은 아니시고, 처음 진단 내린 것과 같이 열감기신 것 같습니다. 발열이 심하니 일단 주사는 한대 맞고 가세요."

"네."


주사를 맞으니 열이 내리고 조금 살 것 같아졌다. 그래도 돌팔이는 아니라며 집에 와서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남편과 같이 밥도 먹고 웃으면서 장난칠 정도로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20. 02. 27.


아침에 일어나니 상태가 어제의 두배로 안 좋아졌다.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열이 오르니 몸이 쳐지고 고개를 가누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쉬겠다고 전화를 드리고 연차를 썼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쓰레기를 버리러 다용도실 문을 열면 뼈까지 시릴 것 같은 오한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누워만 있으니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아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하루 종일 편한 자세를 찾다가 밤이 되었다.


밤이 되니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으려고 억지로 밥을 챙겨 먹고 약 먹고, 우유 마시고 약 먹고를 반복했는데 위까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위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열도 나고 3중고. 저녁에 결국 기어 다니다시피하니, 남편이 참지 못하고 응급실을 가자며 내 손을 끌었다.


"여보, 근데 일단 내가 열이 나니까. 전화를 해보고 가야 돼."

처음 전화를 한 병원은 자기 병원에는 37.5도가 넘는 환자는 아예 받고 있지 않다며 방문을 거절당했다. 코로나 선별 진료소가 있는 더 큰 병원을 안내받고 그쪽으로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 같은 대답을 한 후에야 방문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소변검사, 피검사, 코로나 검사, 뇌 CT, 복부 CT, 엑스레이까지 온갖 검사를 진행했고 드디어 아픈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복부 CT에서 신장에 염증소견이 보여 신우신염이 의심된다는 진단이었다. 입원을 권했지만, 일단 집에 가서 짐도 챙겨야 해서 내일 외래로 방문하여 입원을 하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이 지점이 제일 후회되는 지점인데 다음 날도 또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해열진통제의 약발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끙끙거리며 온 집안을 기어 다녔다. 약을 주워 먹었다가 토하고 열이 나서 토하고 고통의 시간이 흘렀다.


2020. 02. 28.


오전 9시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코로나 설문지를 작성하고, 손 소독을 하고, 외래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고, 소변검사,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 1차 진료비 정산을 하고, 겨우 해열진통제를 맞을 수 있었다. 그게 처음 병원을 방문한 지 3시간 만이었다.

그 3시간 동안 정말 제발 진통제 좀 놔달라고 사정하고 사정해야 할 정도로 두통이 심해졌다. 입원하려고 챙겨 온 짐도 어디다 내버려 두고 주사실에서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찾으러 갔다.


신우신염은 복부 CT상 확실하긴 하지만, 신우신염으로 이 정도의 두통이 생기기는 어렵다고 진단한 감염내과 교수가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며 신경과로 협진을 요청했다고 외래 진료를 보라고 했다. 해열 진통제를 맞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 신경과로 가서 진료를 받으려고 기다리는데 그 의사의 태도가 이상했다.


"아 그 감염내과에서 외래를 보셨고요? 발열이 있으시고요? 코로나 검사는 하셨어요?"

"네. 어제 응급실 방문했을 때 검체 채취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아, 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차트에 안 나와있나요? 어제 응급실 방문했을 때 코에 브러시 넣고 검체 채취해 가셨는데요."

"차트에 안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코로나 검사가 아니고 일반 독감 검사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다니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를 시도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자, 난감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 지금 감염내과 교수님이 회의 중이시라, 통화가 안돼서 일단 나가 계시면 확인하고 다시 부르겠습니다."


발열환자의 진료거부였다. 이미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온갖 검사를 다 해놓고 코로나 일지 모르니 진료를 못하겠다는 태도 잠시 화가 났지만, 내 상황에서 진료를 해달라고 뗴를 쓸 수도 없었다. 만에 하나 코로나라면 저 의사의 판단이 맞았겠고,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으로 나왔다가도 재검하면 양성이 나오기도 하는 마당에 믿을 수 있는 100%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잠자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 진통제를 맞고 멍해진 머리로 링거를 꽂은 채 앉아있었다.


'이 시국에 아픈 내가 죄지.'


그래도 입원을 했고, 항생제에 해열진통제에, 생리식염수에, 영양제에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두통에 시달리고 핸드폰도 제대로 볼 수 없이 정신을 놓고 있다가 차츰 나아져 3월 2일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발열이 잡히고, 기침을 비롯하여 어떤 호흡기 증상도 없지만, 아직도 신경과 진료는 받지 못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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