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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Feb 23. 2020

남편 건강은 내가 책임진다

썩은 우유맛 건강


















01 

겉보기만 멀쩡하지 맨날 '무릎 아프다 허리 아프다 턱 아프다' 아프다를 달고 사는 우리 남편

뭔가 걱정되어서 엄마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글루코사민에 크릴새우 오일에 영양제가 잔뜩 택배로 도착했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 되는데 또 병원은 안 간다. 

무슨 똥고집인지 잘 모르겠다. 도대체.

그래서 영양제를 챙겨주는데 그것도 챙겨줘야 먹는다.

물과 약을 손에 쥐어줘야 그제야 먹는다.

그나마도 오늘은 안 먹어도 된다며 반항을 한다.


아프다고 하지를 말던가, 약을 잘 챙겨 먹던가, 병원을 가던가 셋 중에 하나는 해야 하지 않나...... 화가 난다.


02

결국 맴매를 들었다. 

"몽둥이로 궁둥이 맞고 먹을래요? 챙겨 줄 때 곱게 먹을까요?"

조심스럽게 타일렀더니 그제야 벌떡 일어난다.

"약 주세요. 물도 주세요."

조금 귀찮아서 몽둥이가 조금 부들부들 흔들렸지만 꾹 참고 약은 왼손에 물은 오른손에 쥐어줬다.


03

심한 방귀 냄새가 걱정되어 유산균도 먹어라 먹어라 했지만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미숫가루에 살짝 유산균을 첨가해 보았다.

왜냐면 유산균이 약간 고소한 미숫가루 맛이라 잘 어우러질 줄 알았다.

워낙 좀 둔탱이라 아마도 감쪽같겠구나 생각했다.


스스로 정말 나는 현모양처다 생각하면서 뿌듯했다.

'난 정말 배려왕이야!!' 하면서-


04

회사 가는 길에 먹으라고 아침 먹고 후식으로 챙겨주었다.

남편은 워낙 미숫가루를 좋아해서 신난다고 들고 출근했다.

양치를 해서 조금 이따 먹겠다며 무사히 잘 들고 출근했는데-


05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원래 '출근 잘했다, 퇴근한다' 하는 전화는 매일 하는 편이라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엇! 여보! 잘 출근했어요?"


오늘은 내가 쉬는 날이라 밥도 차려 주고, 디저트까지 챙겨줬으니 뭔가 뿌듯한 마음으로 한껏 뿌듯하게 전화를 받았다.


06 

"여보~! 이거 미숫가루가 이상해! 시큼해! 우유가 상한 거 아닌가? 뭔가 시큼한데 이상해. 유통기한 확인해봤어요?"

"음? 미숫가루 탈 때 내가 좀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기만 했는데. 그리고 유통기한도 엄청 많이 남았어. 이상하다."

"아니, 여보가 타 준 거라 일단 먹긴 했어. 나 탈 잘 안 나잖아. 그런데 혹시 여보가 먹고 배탈 날까 봐 전화했어~"

"에이 괜찮아 아침에 먹을 때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어. 여보가 양치해서 입맛이 이상한가 보다."

"아 그래?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07 

정말 이상해서 다시 우유를 꺼내고 미숫가루도 꺼내서 확인해봤는데 둘 다 유통기한은 아주 많이 남아있어서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다시 한번 미숫가루를 한번 타 먹어 봤다. 꿀도 담뿍 넣어서 그런데 맛있기만 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하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나의 미숫가루와 그의 미숫가루의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산균!!!!!!!!


아마... 유산균을 코팅하고 그 위에 뭔가 가미를 한 거라, 시간이 지나 우유에 캡슐이 녹으면서 유산균 특유의 시큼한 맛이 우유가 상한 맛을 나게 했나 보다.


"범인은 밝혀졌어! 바로 범인은 유산균이었어!"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수해서 광명을 찾아야지 싶었다.


"하지만, 유산균 때문에 시큼한 거라 배탈은 안 날 거야. 건강할 거야. 하하!"

"아 그래? 그럼 다행이다." 


다행이 잘 넘어갔다.


여보 나의 썩은 우유맛 사랑을 잘 받아보았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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