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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Apr 21. 2020

7. 나는 남편만 보면 이가 간질간질해진다

술만 마시면 사랑을 고백하는 주사라니

"야...너네 오빠 좀 너무 하시더라..."

"왜??"

"그날 너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우리가 '이 아줌마 어디 갔어~!'이러고 찾았거든 근데 갑자기 너네 오빠가 '아줌마라고 하지 마! 아줌마 만들려고 결혼한 거 아니야! 아줌마 만들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했을 거야!' 하시는데 우리 뜨악했어."

"아...그...술 취해서 그래! 주사가 그래 주사가."



 

결혼하고 생긴 주사는 아니다.


연애 때부터 그랬다. 평소에는 경상도 상남자 인척 자기가 애정표현도 못하고 해서 미안하다, 이해해달라 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사랑합니다. 내가 많이 사랑합니다." 그래 놓고 술 깨면 자기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소리를 했을 리 없다며 나 보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주량이 센 편이라 좀처럼 취하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단둘이 남게 되면 어김없이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합니다. 나는 정말 너랑 결혼한 걸 잘한 일이야. 행복하게 해 줄게." 그럼 직감한다. '우리 남편 취했구나.' 맨 정신에도 사랑을 속삭이면 좋으련만 평소에는 내가 "사랑해요."라고 해도 "나도요." 하는 정도로 밖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이 좀 과하게 들어가면 그때서야 터져 나온다. 사랑이 그렇게 넘쳐 흐를 수가 없다.


처음에는 단 둘이 남게 되면 나에게만 사랑한다 말하던 남편이 요즘 업그레이드돼서 내가 자리만 비우면 "나는 와이프 진짜 잘 만난 거 같아. 나는 진짜 쟤만 있으면 돼." 여기저기 팔불출처럼 아내 자랑을 한다. 아마도 "아줌마 만들려고 결혼한 거 아니야!" 이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 같다.


지난번에 친정에 놀러 가서 홀짝홀짝 더덕주를 마시더니 취해서는 "어머님. 저는 진짜 옥이만 있으면 돼요." 이 말을 한 열 번도 넘게 반복하면서 떠들다가 평상에서 아떨어졌다. 엄마가 그걸 보고는 무슨 애기가 혼자 떠들다가 잠드는 거 마냥 혼자 저렇게 떠들다가 잠드냐고 신기해하셨다.


바람은 애초에 억누르지를 말던가, 갑자기 터져 나오지 말던가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귀여워서 심장에 해롭다.)


술만 마시면 재잘재잘 떠드는 게 꼭 참새 친구 같다. 재잘재잘 사랑을 속삭이다가 조용해지면 이내 잠들어있다.


그러다 드렁드렁 갑자기 우렁차게 코를 곤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우씨 내가 먼저 잠들었어야 했는데!!!!! 재잘재잘이 한테 또 당했네!!!!!" 땅을 치고 후회를 한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은 귀여운 맛에 데리고 사는 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딱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남편은 정말 귀여운 남편이 최고인 것 같다.


남편을 보고 있으면 자꾸 이가 간질간질거린다.
그래서 자꾸 깨물게 된다.
"와그작"




"여보. 여보는 나중에 우리 아기가 태어나도 아내가 늘 1등이어야 돼! 알았지?"

"응응 알았어! 근데 여보는 아기 낳으면 나 내다 버릴 거 같아."

"맞아! 맞았어! 아마 나는 그럴 거야. 아기는 여보 보다 귀여울 거니까."

"우씨 그게 뭐야."

"그래도 2등 시켜줄게 2등!"

"우씨 알았어."

"여보는 내가 몇 등이다?"

"1등!"

"잘했어!"


지금은 세상에서 귀여운 것 중에 내꺼 중에 남편이 1등이다. 조만간 2등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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