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May 19. 2020

문서를 '예쁘게' 써와.

졸업장에 잉크도 마르기 전이었던 시절 도서관장님과 팀장님의 불화로 '도서관 종합 운영 계획'을 쓰게 된 적이 있다.


보통은 관장님이 쓰시거나, 중간관리자가 쓰는 게 맞는 것이지만, 두 분 사이에 작은 불화가 있었고 막 입사한 내가 개관하는 도서관의 '도서관 종합 운영 계획'을 쓰게 되었다.


그게 어떻게 생긴 문서인지 본 적도 없는데, 막막해 하자 서울 공공도서관의 종합 운영 계획을 주시며 큰 틀은 맞추고 세세한 부분만 조정하면서 쓰라고 하셨다.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과제하듯 어떻게 어떻게 삼십 페이지짜리 문서로 비슷하게 써서 가져갔더니 관장님이 그러셨다.


"음.. 잘 썼는데, 좀 예쁘게는 안 되나?"


문서를 예쁘게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감 조차 잡을 수 없었다.


"문서를 예쁘게 하라고 하시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게끔 만들어 오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냥 좀 문서가 예뻤으면 좋겠어."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PPT로 작업을 할까요?"

"뭘로 하든 아무튼 예쁘게 해와."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문서를 예쁘게에 대해 조언을 구했지만, 다들 같이 분노만 해줄 뿐 어떻게 하라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도서관 종합운영 계획을 사십 페이지짜리 PPT로 만들어서 관장님께 드렸다.


"권 사서, 이거 아닌데."

"저는 문서를 예쁘게 만들어 오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고, 이게 제 최선입니다."

"알았어. 일단 알았어. 하하하. 예쁘네. 됐어."


나도 난데, 관장님도 참 관장님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문서를 예쁘게가 무슨 뜻인지 안다.


문서는 정확한 내용과 결론만 명확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예쁘게'가 내가 원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문서를 예쁘게 하는 건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은 분야였다. 입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과 다름없었던 나는 문서를 예쁘게 하라는 관장님의 지시가 세상에서 제일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예쁘게가 뭔데!!!'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제 나는 제법 문서를 예쁘게 쓰는 사람이 됐다. 문서 쓰는 걸로 문제를 전혀 겪지 않을 정도이고, 내 문서를 따서 문서를 쓰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상사를 겪었다.


예쁜 문서에 집착하던 관장님
숫자에 집착하던 팀장님
색깔에 집착하던 선임 사서
문서 여백에 집착하던 사무처장님
오타에 집착하던 팀장님
논술 선생님처럼 빨간펜부터 집어들던 관장님
어순과 문법에 집착하던 관장님


도대체 문서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만 명확하면 되지, 각자 집착하는 분야도 다르고 검토하는 부분도 달라서 문서 문서 반려를 열 번도 넘게 당하다가 결국 "000 씨, 내가 주는 문서랑 000 씨 문서랑 다른 게 뭔지 한번 다시 봐봐." 라며 자신이 쓴 문서를 보여주는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건지 알수가 없는거다. 옆에서 보던 동료가 "혹시 이거 여백 아냐?"라고 하는데 미묘하게 5mm정도의 좌우여백이 더 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문서 여백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가슴을 치며 '이게 뭐라고! ' 혼자 옥상에 가서 도서관을 부셔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다닐 때 '정보 서비스론'을 듣고 정보 길잡이를 작성해서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20점 만점의 과제에서 2점을 받았다. 나름 정보의 주제와 정보원의 질도 만점 받은 친구들과 다른 점이 없었는데 이의를 제기하러 교수실에 방문했을 때 나의 2점짜리 과제의 이유는 '들여 쓰기'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였다. 들여 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문서는 볼 필요도 없는 문서라 0점을 주려다가 제출은 했으니 선심 쓰듯 2점은 주었다고 내 리포트 점수의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게 참 교육이었나 싶기도 하다. '세상은 너의 껍데기로 인해 너의 알맹이는 봐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 걸 가르쳐주려 하신 거라면 그 교육은 참된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들여 쓰기 하나로 이런 점수를 주는 교수의 수업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다며 그 이후로 전공필수를 제외하고는 그 교수님의 수업을 듣지도 않았다. 대학생은 수업을 교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십분 활용해서! 정보 서비스론은 내 학부 전공과목에서 최악의 점수였지만 재수강을 해서 학점 세탁도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보봉사 분야의 기획과 담당을 꽤 오래 했다.


하지만 직장은 선임을 결재권자를 선택 할 수가 없다.  부당하다고 피해버릴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걸로 백번 반려당해도 백한번 째 재기안을 올려야한다.


들여 쓰기에 여백에 당신의 상사가 어떤 것에 꽂혀있을지 모른다. 또, 여백 같은 것은 팀장님 기준 다르고, 그 위 상관의 기준이 달라서 이렇게 고쳤다 저렇게 고쳤다가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다. 여백이 좁다고 해서 수정해서 올렸더니 그 다음 결재권자가 너무 넓다고 반려 시킨적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당하게 문서를 반려당했다고 생각했던 20대 초반의 나의 문서를 지금의 내가 본다면 나도 똑같이 '잘 썼는데, 좀 예쁘게 해 보자.'라고 말할 것 같다.


최악의 상사를 만났다고 가슴을 치던 그때의 초보 사서인 나에게
겉치장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너의 알맹이를 보여주려면 매력적인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토닥토닥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불리든 나는 사서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