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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Jun 24. 2021

입덧하는 자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입덧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입덧을 겪어본 사람이나 겪지 못한 사람이나 다들 '곧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며 위로했다. 또 누군가는 '입덧은 죽을 거 같지만 죽지 않는 병 이래.'라고 토닥이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그 정도야? 말도 안 돼'라며 놀라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거야?' 하는 호기심 어린 질문까지도 받았다. 말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체기가 목 끝까지 차올라서 숨도 헉헉거리며 쉬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체기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입덧이 심하지 않을 때는 먹을 수는 있었다. 그 뒷일은 변기와 감당을 하더라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심해질수록 식사를 함께하는 일이 곤욕스러웠다. 나의 입덧은 불에 익힌 모든 음식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고 특히나 기름과 고기 냄새에 민감했다. 물론 임신하기 전에는 나도 가장 즐겼던 모든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니 사진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고, 나중에는 단어만 보아도 속이 울렁거렸다. 이 모든 것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TV광고와 유튜브 광고 SNS의 피드들 다 고기들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거나 치킨이 바삭하게 튀겨지고 있었다. 입덧을 하고 있는 임산부에게 안전지대는 없었다.


그나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은 나았다. 그런데 내 입덧으로 같이 살고 있는 남편도 음식을 먹을 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회사에서의 식사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육식 파인 남편의 식단에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식성이 참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직장 동료들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먹자며 점심 메뉴를 결정하려고 했으나 식성이 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메뉴는 내가 먹을 수 없는 것들로 정해졌고 나는 음식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서성이면 동료들은 미안한 얼굴로 식사를 했다. 직장인의 가장 소중한 점심시간을 망쳐버리는 것 같아서 한두 번 함께하려고 노력하다가 스스로 혼자 밥을 먹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자꾸 미안한 기색을 하는 동료들의 착한 심성 때문에 꽤나 애를 먹었다.


전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 나는 새벽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침이면 입덧이 심했는데 입덧이 심해지기 전에 미리 일어나서 뭐라도 입에 욱여넣어야 울렁거림이 멈췄다. 5시에 깰 때도 있고 6시에 깰 때도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미라클 모닝이다 뭐다 계획성 있게 공부도 하고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하지만, 임산부의 새벽 기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몽롱하고 거북한 상태에서 가만히 누워 멀뚱멀뚱 누워있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 타고 누워있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어도 천정이 울렁거렸다.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할 때 식욕이 억제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지만, 입덧이 시작되고 식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새삼 깨닫는 중이다. 정말 살기 위해 먹는 느낌이다. 먹기 싫고 거북하고 역한데 먹지 않으면 속이 뒤집히고 신물이 올라오니 뭐라도 입에 욱여넣어야 했다. 맛이 있냐 없냐의 차원이 아니었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역하지 않은 음식인지, 먹었을 때 토하는 음식이냐 토하지 않는 음식인지로 나뉠 뿐이었다. 머리로는 정말 먹기 싫은데 몸을 생각하면 먹어야 하는 지독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맛은 생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입에 욱여넣었다. 내 경우에는 바나나, 맛밤과 같은 향이 적고 담백한 것이 그나마 속 쓰림을 잠재워줘서 그것을 먹었다.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훅 끼치는 냉장고 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남편은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나를 피신시키기 바빴다. 냉장고 문 열기도 힘들어지는 시기가 있을 테니 냉장고를 미리 청소해두라는 임신 선배님들의 말에 냉장고를 청소하고 조금씩 남았던 반찬들도 모두 버려서 비어있는 냉장고에서 끔찍한 냄새가 났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이게 누군가가 이렇게 인간을 프로그래밍한 것이라면, 인간은 멸종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고통을 참아가며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들로 이어지는 이 세대가 더 이상 이 고통을 감내할 사람이 없다면 이어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가진 내내 입덧을 했다고 하고, 보통은 몇 주간만 고생하면 된다고들 하는데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기에 엄마들의 커뮤니티는 난리법석이다.


솔직히 입덧을 겪기 전에는 임신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고통이고 엄마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경험은 생각보다 우위에 있었다. 경험한 입덧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어온 고통 중에 가장 길고 숨처럼 당연했던 것조차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발목이 부러졌을 때도 발을 디딜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있었지만 또 가만히 두면 고통이 잦아들었는데 입덧은 일정 강도의 고통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고통이라 끔찍했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토하고 먹어도 토하는데 그렇게 토하고 나면 그다음엔 두통으로 이어졌다. 뇌압이 차서 머리가 방방 뛰기 시작하면 누울 수도 없었다. 몸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고 싶은데 누우면 머리가 방방 울려서 누울 수가 없었다. 앉아서 잠이 들기도 했다. 배에 손을 올리고 간절히 빌었다. "아가, 엄마가 살아야 너도 살지. 제발 살려줘 엄마를…" 그렇게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기절하듯 잠드는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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