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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준 Aug 07. 2024

인간의 친구, 질감

공간을 변화시키는 질감의 힘.

왼쪽은 카페에서 촬영된 카페트의 질감, 오른쪽은 경의중앙선 열차 내부 바닥의 질감.

내가 질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20년 가로수길을 걸으면서였다. 한 친구와 의류 브랜드인 아더에러(ADER) 스토어를 가기 위해 가로수길을 방문했었는데, 이때가 태어나서 첫 가로수길 방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서울이라는 공간에 잘 놀러가는 편이 아니었다. 서울이 너무 혼잡해서이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다. 기계들로 점령당한 도시, 높은 빌딩이 수두룩하고 길거리나 골목길에도 흥미로운 것들이 존재할 수 없는 빠른 호흡을 가진 도시. 서울은 무언가를 촬영하고 느끼기에는 너무 빠르고 정신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함께 가보자고 했던 가로수길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질감에 대한 집착을 얻게 되었다.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건물들과 상점들을 입장하고, 퇴장했다. 그런데 그 많은 건물들과 상점들을 마주하면서 매 입장과 퇴장의 느낌이 새롭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공간을 들어갈 때는 쾌적하다, 깔끔하다를 느꼈고, 어떤 공간에서는 지저분하다, 불쾌하다, 어둡다 등의 감정을 느꼈다.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이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낀 것에서 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무엇이 내가 공간에 들어갈 때 감정의 변화를 주는가?". 이 답은 질감에서 찾을 수 있었고 내가 질감 사진을 모으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왼쪽부터 벽돌 외벽, 유럽에서 촬영했던 돌바닥 길.

질감이라는 것은 우리 눈에 바로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가정집에 들어선다고 가정해 보자. '문'을 통해 외부에서 내부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집이라는 내부 공간에 들어갈 때 집 안에 펼쳐진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집 안의 냄새, 안에서 들리는 소리, 집 내부의 습함과 건조함 등을 통해 우리는 집안이 풍기는 분위기를 몸소 느끼게 된다. 단순히 외부에서 내부 공간으로 들어간 이 찰나의 순간에 시각, 후각, 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들이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공간에 대한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난 공간을 인식할 때 시각적인 부분이 매우 예민한 편인데 공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들이 물건도, 사람도 아닌 벽의 질감이었다.


우리 세상은 온통 질감으로 가득 차있다. 나무와 같은 자연물만 생각해 봐도 각자 고유의 질감, 텍스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 건축물 자체도 질감이 어떤지에 따라 건축물의 분위기가 바뀐다. 물론 인공 건축물이 자연물과 다른 점이라면 벽돌, 콘크리트, 석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해야한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섞이는 재료로 인해 질감의 결과물이 결정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인공적으로 혼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건축 재료가 등장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질감들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길을 걷는 거리나 보이는 건물, 살아가는 집 내부의 벽지와 벽의 질감 등, 우리가 살아가며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질감을 가지고 있고, 질감으로 인해 우리가 공간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부드럽고 고급져 보이는 질감이 있다면 들어간 공간이 고급지고 정돈 되어 보일 것이고, 굉장히 거칠고 난잡한 질감이 있다면 꽤나 거칠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공간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요소에는 색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난 조금 더 원초적인 것에 집중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돌 외벽이 돌의 질감으로 구성되었기에 저러한 느낌을 풍길 수 있는 것이다. 색이 바뀌어도 돌 외벽이 낼 수 있는 느낌은 바꿀 수 없다. 질감이 풍겨내고 있는 분위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길에서 촬영한 셔터문의 질감.
창고에서 촬영한 질감.

오늘날 인간은 공간 속에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또 공간을 창조하며 살아간다. 건축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만들어낸 공간안에서 다시 공간을 분리시키며 살아간다. 간단하게 집 내부를 떠올려보라. 집이라는 공간 자체도 이미 만들어낸 공간인데, 그 공간에 거실, 다락방, 주방과 같이 필요에 따라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인간에게 있어 공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공간에는 필연적으로 질감이 따라온다. 우리는 공간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카페를 들어갔을 때 이쁘다, 깔끔하다는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 카페 공간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질감'이라는 친구가 분명 한 몫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질감들을 촬영하고 난 뒤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이런걸 촬영해서 뭐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난 질감을 관찰하는 행동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다. 오늘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공간', 그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질감인데, 왜 한 번쯤 집중해서 질감을 관찰해 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본인이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이 이쁘다고 생각이 들면 한 번쯤은 공간에 붙어있는 질감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해 보길 바란다. 또 본인 집에 존재하는 모든 질감들을 촬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모험이 될 것이다. 질감을 찾아나서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질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길을 걷다가 본인이 좋아했거나 눈길을 끄는 질감을 목격하게 되면 또다시 그 질감을 촬영하게 될 것이다.

아더에러(ADER)에서 촬영했던 나의 첫 번째 질감 사진, 당시 아더에러 스토어 내부에 있던 카페트를 촬영한 것이다.
일산 호수공원에 위치한 의자의 질감.
한 엘리베이터에서 촬영한 벽 질감.
왼쪽은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촬영한 자갈 바닥의 질감, 오른쪽은 바르셀로나에서 나폴리로 이동할 때 탑승했던 비행기 내부 벽의 질감.
갈라진 시멘트 외벽의 질감.
일산 호수공원에서 촬영된 바닥 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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