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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준 Jul 31. 2024

쓸모없어 보이는 문짝

기능을 상실한 문의 형태

[사진 1]

오늘의 이미지는 1편의 주인공이었던 '씽씽이' 만큼이나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주인공은 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은 왔다 갔다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통행 수단이다. 타인의 출입과 통행을 통제하고 제한하기 위한 용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진 1]의 문은 과연 '문'이 해줘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가?


설명하기 쉽게 이제부터 사진에 보이는 문에 '쓸모없는 문'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것이다. '쓸모없는 문'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문을 굳이 여기에 설치한 이유가 뭘까?', '설치한 이유가 있다면 집주인은 돈을 쓰면서까지 설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였다. 방범용으로 문을 설치했다고 하기에는 계단 옆쪽이 훤히 뚫려있어 무의미해 보인다. 만약 이전부터 계단을 통해 길고양이나 강아지들이 무단 침입을 하는 게 불편해서 설치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계단 옆쪽을 통해 현재도 충분히 침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방범용으로 설치를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문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문이 설치되었으니 쉽게 해답을 찾기 힘든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쓸모없는 문'이 설치되어 있는 위치가 주택 단지였기 때문에 옆에 들어서있는 계단이 붙어있는 구조를 가진 다른 주택들도 몇 곳 있었다. 하지만 '쓸모없는 문'처럼 설치되어 있는 '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외부 계단에 이렇게 문짝을 달아놓는 것이 내가 모르는 유행인가 싶어 다른 주택가들도 돌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위 사진과 같은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사진 2]

[사진 2]에 보이는 문은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건물 사이의 틈을 활용해 물건을 보관하거나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문들은 거리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인의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 틈에는 보통 상가 관리자가 문을 설치해 놓는 경우가 있다. [사진 2]의 문은 문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좌우 벽이 완전히 막혀 있어 문 위로 점프해 넘지 않는 한 반대편으로 갈 방법이 없다.


이처럼 정상적인 '문'을 본 뒤 오늘의 주인공인 '쓸모없는 문'을 다시 보면, 확실히 이상한 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겉모습은 분명 문이지만, "문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 3]

문이 잘 보이도록 사진을 조금 더 확대해 보았다. 확실히 누가 봐도 이상한 문이다. 방범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조경을 위해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주변과 그리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문이 아니다. 고급스러운 재질이나 패턴을 사용한 것도 아니라서 집주인이 심사숙고 끝에 고른 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들이 오히려 이 문을 더욱 신비롭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쓸모없는 문'이 왜 설치되었는지 상상해 보기 위해서는 문 주변과 문 자체를 더욱 면밀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문 밑에 무성히 자란 풀들을 보았을 때, 집주인이 문을 설치한 뒤에는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문 상단에 묶여 있는 천은 왜 둘러져 있는지, 그 경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요소로 보인다.

[사진 4]

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녹이 심하게 생기진 않았다. 문 상태가 상당히 양호했고,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듯했으며 페인트가 심하게 벗겨진 흔적도 없었다. 처음엔 이 문이 업체를 통해 설치된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관찰할수록 DIY의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납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조립식 문처럼 필요한 부품들을 하나씩 붙여서 만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사진 5]

또 '쓸모없는 문' 왼쪽 상단에 위치한 우편함이 과연 문이 설치되던 시점에 같이 설치된 물건인지도 궁금해졌다. '쓸모없는 문'이 없던 시절에는 우편함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집 정문에 설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우편이나 택배 배달원이 누구나 집주인의 정문 앞까지 접근할 수 있었겠지만, 개인주택에 거주하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집은 누구에게나 매우 개인적이고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특히 담벼락 없이 정문이 바로 노출된 형태의 개인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따라서 집주인이 원했던 것은 '쓸모없는 문'을 설치해 집과 외부 공간의 분리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집주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집과 바로 연결된 계단까지도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쓸모없는 문'의 존재로 인해 완벽한 보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과 연결된 계단 사이에 경계가 생겼다. '쓸모없는 문'이 없었다면, 누구나 쉽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을 것이며, 집주인 입장에서 자신의 집 영역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계단이 거리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집주인은 문 옆에 벽까지 세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벽을 세워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큰 공사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며, 바로 옆에는 공동주택 건물까지 있는 상황이기에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반쪽짜리 문처럼 보일지라도, 집주인이 원했던 '공간의 분리'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방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계단을 침범하려면 계단 옆 손잡이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는가. 상당히 수상해 보일 것이다. 우리 눈에는 문으로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문'처럼 보일지라도, 집주인에게는 집 정문과 계단을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문'일지도 모른다.

[사진 6]

서비스로 하나 더 발견해서 찍어왔다. 양 옆이 형식적으로 막혀 있어서 '쓸모없는 문' 보다는 문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벼락과 문의 높이가 같지도 않고, 담벼락의 스타일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사진 6]의 문을 더 유머스럽게 만든다. 마치 남의 집 문짝을 몰래 떼어다가 본인 집 담벼락 사이에 끼워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길에서 본 문 중에 특히 재미있었던 문이었다.


문이라는 물체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 같다. 문을 열면 그 뒤로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문 앞의 공간과 문 뒤의 공간은 대체로 서로 다른 느낌을 주며, 문의 형태, 패턴, 색상, 크기에 따라 문을 열 때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문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사물 중 하나로, 오랫동안 함께해 왔지만, 매번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는 듯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거리에서 마주치는 문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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