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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준 Jul 24. 2024

사건의 냄새를 풍기던 푸른 씽씽이

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촬영 날짜 : 2024.07.23 화 | 촬영 장소 : 경기도 파주시 파주 중앙도서관 뒤 후곡공원 산책로

이전부터 다양한 사물들을 찍어왔지만 길을 걷다가 상당히 오랫동안 시선이 많이 뺏긴 사물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미지 자체가 굉장히 강렬했고, 사건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 물체였다. 씽씽이가 숲 산책로에 버려져 있는 이미지는 자주 봤었기 때문에 익숙한 이미지일 것이다. 씽씽이가 부서져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이미지 역시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이미지다. 하지만 위 사진의 씽씽이는 느낌이 달랐다. 인위적인 냄새가 상당히 많이 났기 때문이다. 씽씽이의 손잡이는 어디 있는지 주변에 보이지도 않았고, 손잡이 대신 나무 막대기가 꽂혀 있는데 어째 이런 꼴이 되었는지, 또 여기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위 이미지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사건은 분명 누군가가 이 근방에서 멀쩡했던 시절의 씽씽이를 타고 다녔지만 어딘가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 씽씽이로써의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기에 이 숲 속에 버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이, 혹은 어른일 수 있는 누군가가 손잡이 쪽에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힘차게 꽂으며 잠깐 가지고 놀았을 수도 있고, 그냥 재미로 아구가 맞는지 꽂아본 결과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최종적으로 보게 된 이미지는 푸른 씽씽이 손잡이 위치에 기다란 나무 막대기가 힘차게 꽂혀진 이미지였다는 점.

씽씽이의 바닥면을 보면 흙이 잔뜩 묻어 있는데, 누군가 올라 탄 흔적일 수도 있고, 최근 파주 지역에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바람이나 비로 인해 생성된 자연적인 흙 자국일 수도 있다. 저 푸른 씽씽이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도 한번 상상해보자. 저곳은 내리막 경사에 걸쳐져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원래 세워져 있다가 누군가가 길을 걷다가 재미로 밀어서 저 위치에 딱 걸친 것은 아닐까? 혹은 처음 씽씽이가 버려진 장소 자체가 여기였을 수도 있다.


조금 더 사물의 아래쪽을 들여다보았다. 흙이 쌓여있는 정도가 상당했고 그렇다고 과한 정도는 또 아니였다. 씽씽이 하부 쪽에 고장 난 부분이나 파손의 여부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높은 확률로 씽씽이의 손잡이 부분이 파손되어 버린 것이거나, 혹은 그냥 분리수거하기 귀찮았던 누군가가 동네 뒷산에 멀쩡했던 씽씽이를 대충 버려놓았는데 산에 놀러 온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손잡이를 파손시켜 손잡이의 행방이 묘연해진 걸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근처에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으니 원래 있던 장소가 여기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부 쪽 바퀴를 관찰해 보다 발견한 또 다른 부분이라면 꽤나 거칠게 사용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왼쪽 바퀴의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원 주인이 씽씽이를 험하게 타는 스타일이었을 수도 있고, 버려지고 난 뒤 내리막길에서 누가 굴려서 생긴 상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손잡이가 부서져 이 씽씽이를 버린 것이 아닌 왼쪽 바퀴가 고장나 버렸을 가능성도 생긴 것이다. 만약 왼쪽 바퀴가 고장 나서 이 씽씽이가 버린거라면, 버려졌을 당시 씽씽이의 손잡이는 멀쩡했을 가능성도 있다.


오른쪽 바퀴 상태와 왼쪽 바퀴 상태의 상당한 차이는 씽씽이에게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던 팩트였다. 위 사진을 잘 살펴보면 왼쪽 바퀴와 오른쪽 바퀴에 쌓여있는 흙의 양이 다르다. 이는 씽씽이에 발을 올릴 수 있는 플라스틱 발판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데, 오른쪽 구역에 비해 왼쪽 구역에 흙이 더 많이 쌓여있다. 최근 비가 많이 왔을 때 씽씽이를 향해 비와 흙이 바람을 타고 오는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이었을 수도 있다. 상상을 더 확장해보면 이 씽씽이가 원래 세워져 있지 않았고 어디 풀 속에 왼쪽으로 눕혀져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우리가 산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씽씽이의 이미지와 부합하다.

웹 서핑을 하다가 찾게 된 멀쩡했던 시절의 씽씽이

약 2021년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멀쩡했던 시절의 씽씽이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더 많아졌다. 씽씽이 하부에 뒷바퀴를 밟아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브레이크가 있었는데 이 역시도 현재는 없어진 상태이다.


버려졌을 때 브레이크가 없어졌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버려지게 된 것일까? 가능성은 관찰할수록 끝도 없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 이미지의 하이라이트인 씽씽이의 손잡이 쪽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나무 막대기라는 인위적인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분명 어떠한 사건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나무 막대기에 힘을 줘서 억지로 꽂으면서 생긴 건지는 몰라도 벌어짐의 흔적이 있었다.


이 원인을 알 수 없이 꽂혀져 있는 나무 막대기의 존재로 인해서 푸른 씽씽이가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냥 버려져 있는 흔한 씽씽이들의 이미지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쓰레기다. 하지만 이 푸른 씽씽이는 분명히 이 장소에서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이 나무 막대기가 그냥 여기 꽂혀 있을 리가 없고, 이 위치에 도착하게 된 경위 등, 내가 촬영한 이 씽씽이에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이미지들에 절대 손을 대보지 않지만 저 나무 막대기가 작은 힘으로도 뽑히는지만 알고 싶었다. 정말 저 플라스틱의 벌어짐이 강한 힘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맞는지, 그리고 나무 막대기를 넣고 빼기 쉬운 정도를 알고 싶었다. 따라서 정말 살짝 힘을 주어 작은 힘으로 막대기를 빼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그냥 빠질만한 막대기가 아니었다. 강한 힘을 줘서 저 구멍에 박아 넣은 막대기였다.


씽씽이에 막대기를 꽂은 사람은 누구일까? 어린아이? 혹은 다 큰 성인? 아니면 산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할머니나 할아버지? 도대체 누구일까. 저 막대기는 도대체 어디서 구한걸까. 막대기 형태로만 보면 나무 빗자루 손잡이인데...


어떤 방식으로 저 나무를 구멍에 박아 넣었을지, 씽씽이를 들고 어떤 각도로 넣었는지, 아니면 그냥 세워둔 상태로 넣었는지, 혼자가 아닌 2~3명이 되는 인원에서 함께 힘을 합쳐 저 구멍에 막대기를 넣을 수 있었는지 등등 다양한 생각이 든다. 확실한 건 이 씽씽이를 5년간 이 자리에서 관찰하고 있어도 절대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이 씽씽이를 멀리서 관찰하다가 재미있는 해프닝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난 이 물체에 정말 깊게 빠져있는 상태였는데, 저기 멀리서 5살은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와 엄마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난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엄마가 이 씽씽이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여자 아이의 시선'이 굉장히 궁금했다. 어린아이의 눈은 굉장히 특별하다.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가장 순수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흥미로운 사건의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는 이 씽씽이에 흥미를 느껴 관찰이나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어린 여자 아이는 곧바로 씽씽이를 쳐다보았고, 나무 막대기에 시선을 한번, 그 다음 씽씽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이용해 씽씽이를 만지려는 순간, 옆에 있던 그녀의 엄마는 곧바로 어린 아이를 막아섰다. "그거 만지면 더러워~, 지지야 지지!"라는 말과 함께 결국 씽씽이에 대한 어린 여자 아이의 흥미는 곧바로 떨어져 엄마의 뒤를 따라갔다. 분명 어린 여자 아이는 씽씽이를 목격한 순간 엄청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관찰하며 탐구하려는 태도를 보였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어린 여자 아이는 흥미를 곧바로 잃고 엄마와 함께 내 앞에서 멀어졌다.


이런 현상을 보면 참 재미있다. 여자 아이의 흥미가 순간 조작되고 통제되어 마치 원래 씽씽이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처럼 씽씽이를 차갑게 지나치는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인상깊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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