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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준 Aug 14. 2024

도시 속 질서

질서들이 힘을 합쳐 만든 무질서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보통 무질서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도시라는 공간에는 서로다른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차도에는 수많은 브랜드의 차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건물이 있다. 건물 역시 서로 각기 다른 생김새와 색을 가지고 있으며 형태와 크기도 제각각이다. 우린 이러한 도시 속에서 질서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시끄러운 소음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도시를 들여다보면, 무질서한 공간에 숨어든 질서들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은 오늘날 신도시나 거주 인구가 많은 도시를 걷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건물이다. 내가 촬영한 이 아파트 앞에는 지하철이 다니는 공간이었고 아파트 단지 밑에는 도보가 형성되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다른 난잡한 요소들은 제외시키고 난 아파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촬영했고 비로소 질서 있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창문들에는 '질서'가 보인다. 철저한 계산과 설계 아래 생성된 창문들의 질서는 사실 건축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설계된 창문의 넓이와 높이, 그리고 창문들 간의 간격은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결과이자 건축가가 아파트에 정해놓은 '불변의 질서'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창문들의 질서와 규범은 만약 아파트라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에서는 변할 수 없는 진리가 될 것이다.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 형태도 살펴보자. 위 사진은 금촌역 부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주택의 건물이다. 공동주택 건물은 아파트에서 보이는 질서와는 다른 느낌의 질서를 선보인다. 중앙계단에 위치한 창문과 거실의 창문 크기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방에 존재하는 창문의 형태까지 서로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거실 창문에 달려있는 발코니의 생김새는 하나같이 똑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질서가 묻어나있고 시각적으로도 질서 있는 이미지로 보이게끔 만들어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건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각 건물이 가지고 있는 규칙성과 질서들이 모여 도시의 무질서함이 형성된다. 우리가 도시를 바라볼 때 느끼는 무질서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질서들의 집합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을 다른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자. 위 사진은 분명 무질서한 이미지로 보인다. 건물들 각각의 높이도 다르고 어떤 아파트는 꼭대기가 툭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어떤 건물은 평평하다. 건물의 색도 각기 다르고 사용한 폰트들과 폰트 크기도 다르다. 전봇대로 인해 건물들을 바라볼 때 일부분은 가려지기도 하는 굉장히 난잡한 상황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린 이제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앞서 말했듯 보이는 건물들은 각각 고유의 규칙성과 질서를 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도시는 굉장히 불규칙하고 정신없다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도시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고유의 질서들이 합쳐져 무질서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도시 속 또 다른 질서들

도시 속 질서는 건물 자체에만 조명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부터인데 바로 도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오브젝트들이다. 도시 속에는 수많은 사물과 기호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안내를 돕는 표지판부터 반대 차선과의 경계를 알려주는 시선유도봉, 공자 현상에서 많이 쓰이는 주황색의 임시 플라스틱 구조물과 공사장 가림벽, 바리케이드, 조명, 의자, 심지어 수많은 쓰레기들 마저 도시 속에 살아가는 오브젝트들이다. 이런 오브젝트들에서 우린 역시나 '질서'를 만날 수 있다.


위 사진처럼 시선유도봉은 저런 형태를 띠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사람들이 놀이공원에서 어트랙션을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시만이 풍기는 질서가 아닐까. 명확한 목적과 안내를 위해 공장에서 가공해 똑같은 규격과 간격으로 오차 없이 만들어져 설치되는 오브젝트들이야 말로 도시가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명확한 질서'이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송수구 역시 시선유도봉과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도시 속 오브젝트이지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이런 도시 속 오브젝트들이 품고 있는 질서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 번쯤은 관심 어린 시선으로 이 오브젝트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위와 같은 이미지를 보고 '질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의 눈이 원래부터 같이 모여있는 것에 대해 그룹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도시 속 오브젝트들을 바라본다면 훨씬 흥미롭다. 왜 이 물건들이 여기에 모여있는 것일까? 왜 여기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설치한 사람은 왜 여기에 이것을 설치했는가? 이런 질문들이 계속될수록 사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은 물론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생각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오브젝트들이 주는 일종의 가르침이 아닐까?)

도시 속 질서에는 인간으로 인해 변형된 질서들도 존재한다. 위 사진으로 예를 들어보면 왼쪽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로 계속해서 이동한 규칙적인 동선들의 누적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결과물이며 오른쪽에 보이는 엔진오일 통들의 배치 역시 인간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이다. 이러한 질서들은 위에서 언급한 '명확한 질서'와는 또 다른 질서이다. '변형된 질서'로써 어떠한 명확한 목적과 설계에 의해 생성된 규칙과 질서가 아닌, 시간에 흐름에 따라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질서인 것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흐른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 흐름에 따라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이기에 사람이 시간 속에서 살아감에 따라 만들어진 '변형된 질서'가 바로 그것이다. 자동차가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보이는 저 골목 하나밖에 없으니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자동차들이 저 길을 통해 지나갔을까. 가운데 보이는 풀들의 길이는 어쩌면 자동차가 지나는 골목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 필드에는 무성하게 잔디들이 깔렸을 것이다. 엔진오일 역시 처음에는 하나였을 것이다. 카센터 건물이다 보니 사용한 엔진오일 통들은 계속해서 쌓일 것이고 사장님의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통해 바라보았을 때 바로바로 버리는 성격이 아닌 쌓아놓는 성격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어쩌면 저 엔진오일들은 사용한 것들이 아닌 새 통들을 저기에 보관해 놓는 것일 수도 있다. 사장님의 성격 스타일에 따라 변화하는 질서 역시 재밌다.)


이렇게 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형태의 질서들을 목격할 수 있다. 질서들이 모여 무질서를 형성하고, 명확한 목적과 설계에 의해서 탄생되는 '명확한 질서'들, 그리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변형된 질서들까지. 우린 오히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낸 무질서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걸어왔을 도시를 이런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은 도시를 걷는 또다른 재미를 형성한다.

명확한 질서 1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명확한 질서 2
명확한 질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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