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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들 Mar 15. 2021

[흡흐흡흐] 7강_지나간 것은 흘려보내요. 시바난다

요가 이야기 인척 했던 연애의 뒷이야기

어떤 말들은 비수가 되었지만, 또 어떤 일들은 후회가 된다. 헤어진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 된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이 장면이 떠오른 날로 시작해보자.


"힘들다는 말 좀 그만 할 수 없어? 일을 줄이라고 했잖아."

"어떻게 줄여! 내가 지금 뭘 줄일 수 있어? 당장 외국 나갈 돈도 벌어야 하고, 또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또 내가 맡은 책임도 있잖아! 하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해? 그럼? 이번 겨울까지만 바쁘면 다 끝나.”

"......."


평소라면 지지 않고 불같이 화를 냈을 사람인데, 어쩐지 그 날은 여느 때와는 달리 싱거운 싸움으로 끝이 났다. 나는 손에 쥔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었고, 몇 달 뒤엔 끝끝내-악착같이-기어코-다-해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의 관계도 끝이나 있었다. 그리고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왜 떠났냐는 질문에 나는 이런 비슷한 대답을 들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가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았어. 네가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 그때, 난 너를 포기했던 것 같아."


나는 요즘 여전히 많이 일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있다. 그리고 잘 쉬고, 잘 놀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나름대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며 산다. 물론 가끔 균형을 잃고 일로 쏠릴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균형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균형을 찾고 건강한 일상을 누리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자, 지난 시간이 아려올 때가 많다. 같이 하고 싶었던 놀거리들, 같이 가고 싶었던 여행지들을 발견할 때면 지난 일들이 후회가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일주일에 주말은 꼭 노트북 없이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면 조금 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은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는데 등의 후회. 뭐 이런 갖가지 쓸데없는 번뇌와 슬픔을 채운 상태로 요가 수련을 가는 날이 있었다. 그때 시작되는 시바난다 요가 이야기다.


시바난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호흡으로 번뇌를 잠재운다. '카팔라바티'라는 호흡으로 시작하는데 배에 숨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콧바람으로 흥, 흥, 흥, 배가 수축되도록 세게 빠르게 내쉬는 호흡이다. 배에 힘을 주어 흥, 흥, 흥 하다보면 콧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내 몸의 나쁜 것들을 내보낸다고 생각하면서 약간은 뱃심을 기른다는 기분으로 한다. 카팔라바티만 잘 해도 배에 알이 얼얼이 배기는 것 같았다. 이 힘찬 호흡이 끝나면, 이어 '나디쇼다나'라는 정화 호흡이 시작된다. 먼저 엄지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각각 오른쪽 콧구멍과 왼쪽 콧구멍을 막는다. 약지를 들어 왼쪽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약지를 닫아 왼쪽 콧구멍을 닫아주며 천천히 엄지를 들어 오른쪽 콧구멍을 열어준다. 왼쪽으로 들이쉬었던 숨이 오른쪽으로 내보내 진다. 이번엔 반대로 오른쪽으로 들이마신 숨을 엄지를 닫고 약지를 열어 왼쪽 콧구멍으로 내보내 준다.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을 맞추는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가운데로 움직여 주는 느낌이 든다. 호흡수련이 끝난 다음에야 몸을 덥혀주는 수리야나마스카라, 즉 태양 경배 자세가 시작된다.


그리고는 내가 제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시르사아사나 즉 머리서기 자세가 시작되는데. 일전에 아쉬탕가 선생님의 머리서기를 본 뒤로, 나는 머리서기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다. 첫째로 선생님의 등근육이 너무 멋있었고, 둘째로 거꾸로 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그 모습이 정말 정말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머리서기가 꼭 하고 싶었던 나는 수십 번을 구르면서도 또 올라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척추가 둥글게 말린 상태에서 아무리 올라가려고 애를 써보았자 머리로 꼿꼿이 서지 못하고, 결국 앞으로 구르게 되기 마련이다. 그걸 본 시바난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먼저 척추를 펴려고 노력하세요. 힘으로 억지로 들어 올리는 건 아무 소용없어요. 척추가 펴진 상태에서 다리를 피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기만 하면 다리는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갈 거예요."


시바난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동작 사이사이에 사바사나 동작이 있어서 한 자세를 마치면 다음 자세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누워서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실패로 돌아간 시르사아사나를 한탄하며 헥헥 거리는 숨을 고르며 사바사나를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아,, 한 번 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렇게 해볼걸. 이번엔 꼭 하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지나간 동작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는 다시 호흡을 고릅니다.
호흡을 고르면서 다음 동작을 준비하세요.'

우리에게도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이던 날도 있었다. 막차 시간까지 하루 종일 같이 놀아 놓고, 내일도 보기로 했으면서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서 '망원에서 합정까지' 한 정거장이면 될 거리를 굳이 굳이 6호선 응암 순환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열아홉 정거장을 돌아서 가는 그런 시절 같은 거 말이다. (세상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6호선은 응암순환이라는 특이한 구조로 지하철이 운행된다. 종점이 따로 있지 않고 응암역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그래서인지 6호선 구산역에 살던 한 친구는 응암 순환 고리를 '버뮤다 응암지대'라고 불렀다.(응암에서 구산역은 거리로는 한 정거장인데, 순환열차를 타야 해서 실제로는 다섯 정거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던 그날의 우리에게, 버뮤다 응암 순환 열차는 합법적으로(?)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더랬다.


아마 누구든 처음은 다들 이러지 않았을까. 반짝이는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두 손으로 벌벌 떨어야만 손이라도 간신히 잡을 수 있는 그런 시절들 말이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 세상에 둘만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어도 되는 시간. 마지막 말들은 비수가 되었지만, 첫 편지들을 읽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불완전함 그대로도 충분히 완전할 수 있었고, 불안한 시간 속 서로가 숨 쉴 구멍이자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더랬다. 하지만 좋았던 시간도, 아팠던 말도 이제는 모두 지나갔다. 감정은 날씨와 같아 뜨거워지기도 차가워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역시 들숨과 날숨처럼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나의 요가 이야기(를 빙자한 씁쓸한 연애의 뒷이야기)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럼 오늘은 지나간 것들에 다정한 이별을 고하기 위해 쓴 노래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떤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글로는 여전히 부족해서 노래를 지은 적이 있다. 그 가사에 멋진 친구가 곡조를 붙여주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많은 날 나는 또 이 노래를 통해 위로받았다.



겨울에는 어떤 표정이 있어

작사 권이들

작곡/노래 이이재



하얀 겨울엔 아린 냄새가 있어

외롭고 슬픈 일들이 모두 일어나니까

학년이 올라가고

우리는 흩어지고

너와 난 멀어지고

지나간 마음은 지나간 마음에게

떠나온 날들은 떠나온 날들에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돌아보면 어쩐지 조금 슬퍼지는걸


흐린 겨울엔 텅 빈 표정이 있어

헤어지는 사람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긴 밤 채우던 이야기

별처럼 흩어지면

너와 난 닿지 않아

지나간 마음은 지나간 마음에게

떠나온 일들은 떠나온 일들에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슬픔만 덩그러니 남아있구나 —


음 —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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