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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들 Apr 10. 2021

[흡흐흡흐] 8강_부드러움이 강함이 되기까지, 하타요가

흔들렸고 앞으로도 흔들리겠지만, 뿌리는 내릴거야.

"이건 위해서 하는 말인데..."
"뭐 그런다고 되겠어요?"
"실망이네요. 고생하셨는데, 고생만 하시겠네."


1년 내내 애정이라 믿은 비판에 시달렸다. 누구도 무례하지 않았고, 어쩌면 일정 부분은 정말로 나를 위한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언을 듣고 온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체하곤 했다. 두통에 시달렸고, 가끔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헛구역질을 해댔다. 구역질을 하고 난 날이면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열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 단점은 쉽게 보이고, 비판하는 일은 재밌었겠지. 아주 교묘한 조언이었다. 아무런 해결책도, 대안도 없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쿡쿡 찌르곤 했고, 뭘 어떻게 해가도 코웃음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에게 나는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어 애를 썼다. 어쩐지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깔아 뭉개지는 느낌이들곤 했는데, 그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월감이 되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1년을 꼬박 사정없이 후려 맞은 뒤의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즈음엔 강한 운동을 하고 싶었다. 일일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으며 꿋꿋해야만 했다. 몸무게가 사정없이 줄어들고, 근력도 체력도 점점 소멸해갔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힘도 세지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요가 일기-흡흐흡흐-에서 풀어주고, 달래주고, 이완시키는 요가 위주로 소개하곤 했다. 인생도 힘든데, 요가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 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라면 인요가류의 편안한 요가나, 빈야사류의 재밌는 요가를 했을 텐데 이 날은 하타 요가 수업을 듣고 싶었다. * 현대 요가가 모두 하타요가이고, 하타요가가 뿌리가 되어 요가 갈래들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요가원 수업 중의 하나였던 하타요가를 그대로 세부 요가 명칭으로 사용하여 쓰기로 한다.


그동안 무에타이, 승마, 스쿠버다이빙이라면 몰라도 요가가 재미없던 이유가 있었다. 상당히 활동적이었던 나는 운동을 해도 꼭 과격하거나 새로운 운동을 좋아했는데, 그에 반해 요가는 너무 정적이고 늘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같아 지겹고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내가 경험한 하타요가는 한 동작을 오래 머무는 요가였다. 인요가도 한 동작을 오래 머물긴 하지만 힘을 빼고 천천히 몸을 이완하는 요가인데 반해 하타 요가는 몸을 굳세게 한 상태에서 오래 머무는 요가였다. 아마 내가 요가를 처음 배우던 날들에 하타요가를 들었다면 고통만 느끼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딱히 강해지고 싶지도 않고, 힘들고, 무엇보다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지루했을 테니까. 몸이 배배 꼬였을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유연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하고 싶은 머리 서기는 오늘 안돼도 내일 또 해보면 되지만, 세상일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도 있어서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단해지고 싶다고 해서 바로 견고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은 원하지만 역시나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나는 이날도 어김없이 '와- 씨- 죽겠네-.'를 속으로 외치며 수업에 임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 와중에 또 90분짜리 수업을 들어가서는 '오늘은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사실 90분짜리 수업인 줄 모르고 당연히 60분 수업인 줄로만 알고 들어갔다.) 동작을 취하면서도 계속 '윽, 언제까지? 언제까지?'만 내내 외치다가 '이제 더 이상은 못해!'라고 포기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마음을 아셨던지 모르셨던지. 내내 무심히 카운트만 세던 선생님은 타이밍 좋게 다음 멘트를 이어 나가셨다. 


버티세요. 자꾸 무너지고 싶어 하는 나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며 저항하세요. 요가는 다들 유연함만 있다고 생각해요. 순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니에요. 저항하고 맞서기도 해요. 하타요가는 지켜보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어떤 마음이 생겼다가 사라지는지 가만히 지켜보세요. 숨이 거칠어질 때 숨이 안 쉬어질 때 한번 더 호흡하세요. 차분하게 평소처럼 호흡하려고 노력하세요. 그럴 때 우리는 강해집니다. 안에서부터 견고해집니다. 강심장이 되는 거예요. 견고하고 강해지세요.


조언 혹은 조소, 혹은 조소 같은 조언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했지만, 그때마다 매번 나를 탓했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내가 부족해서일 거야. 하지만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를 수도 없이 외치며 어금니를 꽉 깨물곤 했다. (뭐 물론 지금 생각해보니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불필요한 사람을 위해 했다는 생각을 하니 좀 배알이 꼴리곤 하지만 말이다.) 잘하고 싶은 나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흔들렸다. 함께 일하는 팀원이 많아지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커지고,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나도 확신하지 못하겠는 일이었지만, 해봐야 아는 일이었고, 그 상태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면 너무나도 아득해지곤 했다. 흔들리기도 잘 흔들려서 이 사람이 이렇게 흔들면 이렇게 흔들리고 저 사람이 저렇게 흔들면 저렇게 흔들렸다. 그렇게 흔들리는 나를 보는 일이 괴로웠지만, 중심을 잡으려 할수록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히 무너질 수는 없으니, 어딘가에라도 뿌리내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너지지만 말자. 문어지지만 말자.(<-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누가 흔들면 그냥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기로 했다. 대신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어딘가 뿌리를 내리고자 애쓴 일이 내겐 바로 요가였다. 


유연하고 견고하고 싶은 나는 이제 선생님 말씀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며 수련한다. 어깨서기를 할 때마다 밖으로 벌어지려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뒤로-아래로 내려가려는 다리를 반다(코어)의 힘으로 잡아 두려 노력한다. 힘들 때마다 한번 더 숨을 쉰다. 숨을 쉬는 나를 지켜본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그렇게 또 일년이 흘렀다. 


틈틈이 적은 나의 요가 일기, 흡흐흡흐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새 나의 수련도 이렇게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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