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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들 Feb 19. 2021

[흡흐흡흐] 6강_아쉬탕가 도전기, 너에게 중독됐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함께라도 두렵지 않은

'단단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게 단단해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굳게 붙잡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안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단단하고 성실하게 붙잡곤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나날이었다. 이런 대화가 떠오른 날이었다.


"난 내가 나를 고용하는 사람이 될 거야. 회사에 내 밥줄을 오롯이 쥐어주고 싶지 않아. 내 꿈을, 내 밥줄을 통째로 쥔 사람들에게 흔들리는 일에 지쳤어.”

".... 그래. 말이야 좋지. 그런데 매번 관심사가 바뀌잖아. 어제는 이걸 한다고 하더니 오늘은 이걸 한다고 하고. 또 바뀌잖아.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하나라도 있어?"


‘해봐야 할 수 있는지 못하는지도 알 수 있잖아. 나도 불안해서 내가 나를 믿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더 네가 나를 믿어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비난하는 말투였기 때문에 나는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이의 실망의 목소리에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나의 모든 중심과 주파수가 저 사람에게 있었기에 티끌같이 작은 말에도 나는 태산처럼 크게 무너졌다.


아쉬탕가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냥 내가 맞는 시간엔 그 수업밖에 없어서였다. ‘땀 많이 남’이라는 부연설명을 읽으며 ‘음, 힘들 것 같아서 하기 싫은데’ 싶었으나 내가 바로 산티아고도 다녀온 몸인데 뭐,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어떤 사람에게 반하고 말았다. 배우나 연예인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요가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에게 반해 버렸다. 유연하고 단단하게 머리 서기를 하는 모습에 그만 눈이 휘둥그레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인 요가는 열심히 들어도 빈야사 수업은 늘 요리조리 피해 다니곤 했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힘드니까 화가 났다. 사는 것도 힘든데 요가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든 것을 참고 견디고 싶지 않았다. 내 요가의 목적은 체형교정도 아니고, 다이어트도 아니고, 체력증진도 아니었으니까! 하루만큼의 한 숨, 깊게 내뱉을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그런데 그 날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하기로 했다. 수업에 10분쯤 일찍 들어갔는데 서로 멀뚱이 쳐다보며 할 말이 없자 선생님이 먼저 물어봤다.


(미소를 지으며) 요가해본 적 있어요?

아, 인 요가만 조금요...? (긁적)

(웃으며) 아이고 이번 수업 어떡하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저 말의 뜻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이고 이번 수업 어떡하지~'라고 하던 선생님의 우려는 농담이 아니었다. 수리야나마스카라 A와 B라는 요상한 말들 사이로 정신없이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리야나마스카라에는 차트랑가단다아사나라는 동작이 포함되어 있는데, 뭐 쉬운 말로는 푸쉬-업에서 푸시-다운과 비슷하다. 선생님은 내 수준을 고려하여 무릎을 대고 서서히 팔 근육을 길러 가보자고 하셨지만, 무릎을 대고 내려가는 것도 내게는 너무 벅찼다. 내려가기도 전에 가슴이 바닥을 향해 푹푹, 하고 쓰러졌다. 아쉬탕가는 처음이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정말 거의 모든 자세를 부드럽고 꼼꼼하게 잡아주셨다.


그러다 보니 그날은 거의 내 일대일 수업이 되었다. 말이 좋아 일대일 수업이지, 누가 보면 흡사 재활 운동원 같았을 테다. 가장 놀라운 자세는 역시 다운독 자세였다. 사실 그동안 다운독 자세라고 하면 이게 엎드려 뻗처를 하는 동작인가? 엎드려 뻗처로 팔 힘을 기르는 동작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세상에!) 그런데 선생님은 다리를 굽혀도 된다고 했다. 에? 엎드려뻗쳐인데? 그리고 발 뒤꿈치를 들어도 좋다고 했다. 오잉? 다들 발뒤꿈치를 붙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선생님은 잔뜩 오므리고 긴장하여 한껏 쪼그라던 내 어깨에 손을 대 마치 잔뜩 구겨진 천을 피듯 힘을 쫙 빼버리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처음으로 아, 다운독을 하면 이런 느낌이 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여러 명이 함께 듣는 수업에서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동작인지 전혀 몰랐던 나만의 다운독 동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손길은 뭐랄까 마법의 손 같았는데, 부드럽게 손이 닿는 곳에서 안되던 자세가 열렸다. 핸즈온 방식의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지도해주신다는 건 곧, 요리조리 피하면서 눈치 보며 몰래몰래 쉬어갈 구멍이 없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진짜 죽을 뻔했다.


아쉬탕가는 정해진 순서에 맞추어 물 흐르듯 동작을 이어나가는 수업이다. 서서 하는 동작들이 끝나면 앉아서 하는 동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 처음 아쉬탕가라는 용어를 들은 내가 그런 걸 알리가 있나. 서서 하는 동작들이 끝나자마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어지러웠다. 그러나 수업은 계속되었다. 앉아서 하는 첫 번째 동작은 단다사나라는 동작이었다. 다리를 앞으로 피고 허리를 곧추세워서 몸을 니은자로 만드는 동작인데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번에도 햄스트링이 문제다. 다리를 펴면 허리가 굽고, 허리를 피면 오금이 저려왔다. 니은보다는 C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계속되는 수업에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뒤로 돌리고... 아찔했다. 내가 두 번 다시 아쉬탕가 듣나 봐라.


머리털까지 쭈뼛설 것 같던 순간, 선생님은 이제 매트에 누우라고 하셨다. 세상에. 와. 드디어 눕는 시간이구나. 드디어 사바사나 시간이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웬걸. 자리에 눕자마자 선생님은, '자, 이제 나바사나, 보트 자세예요. 다리를 들고, 손을 앞으로 밀어주세요.'라는 게 아닌가. 울고 싶었다. 아 선생님,, 제 체력은 진작에 서서하는 동작에서 끝이 났단 말이에요. 여러 명이 하는 수업이었다면 나는 분명 벌써 바닥에 퍼져 누워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업은 2:1 수업이고, 그중에서도 초보자인 나를 위해 선생님은 밀착 과외를 해주고 계시지 않나. 농땡이를 부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브릿지 자세까지 끝나자 무지개 자세 차례가 왔다. 팔로 몸을 들어 올려야 하지만, 내게 그런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였다. 쑤욱— 어라? 내 몸이 들리는 게 아닌가? 선생님이었다. 저렇게 여리여리해 보이는 선생님한테 어디서 그런 힘이 불끈불끈 솟는 것인지.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내 날개뼈 아래에 손바닥을 대고 나를 쑥 들어 올렸다. 우와. 내 몸이 뜬다. 떠! 너무 놀랐다. 그리고 순간 재밌었다. 어릴 적 아빠 비행기를 탈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짜릿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드디어 사바사나를 하는데, 평소 하던 사바사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낸 뒤에 맞이하는 휴식. 완전한 이완. 온전한 휴식이란 온전한 고통 뒤에 맛볼 수 있는 것이구나. 머릿속에 잡념이 들어올 시간이 없었다. 온몸으로 쉬어야 했으니까. 아쉬탕가 첫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어쩐지 집에 돌아가는 길이 상쾌했다. 분명 몸은 너무 힘들어 근육까지 저절로 벌벌 떨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아쉬탕가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쉬탕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요가가 되었다.


그 느낌들이 참 좋다. 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되어가는 느낌들. 처음 차트랑가를 했을 때 무릎을 대고도 픽픽 쓰러지던 나는 어느새 무릎을 대지 않고 아직은 벌벌 떨면서도 그래도 곧잘 내려간다. 무지개 자세는 또 어떤가. 선생님이 들어주지 않으면 올라가지도 못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번에 혼자 쑥 올라가서는 조금 더, 조금 더 손과 발이 가까워지는 수련을 하고 있다. 그뿐인가. 요새는 자세를 잘 모르고 있는 듯한 사람을 발견하면 나의 아쉬탕가 선생님이 그랬듯 나도 아는 범위 내에서 자세를 도와주기도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세상 일은 참 내 맘 같지 않다.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열심히 해도 나아지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일도 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 이해하지만, 그래도 밉고 속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요가도 그럴지 모른다. 우리는 다 다른 몸과 근육들을 타고 태어나서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 동작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다 보면 어느새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엔 꿈쩍도 않던 동작이 어느 날 조금 되었을 때의 성취감. 그 조그마한 성장이 눈으로 보인다는 게 아쉬탕가의 참 매력인 것 같다. 여전히 매일 아침 새벽마다 버스를 타고 요가원에 가 아쉬탕가 풀 시퀀스 수련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선생님도 머리 서기를 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뭔가를 꾸준히 성실히 하는 모습에 또 반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무엇에 반했는지 안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진짜 멋진 모습, 하지만 동시에 제일 어려워하는 일. 작은 일 하나 꾸준히 하는 성실, 여유를 갖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마음, 그래도 안 되는 일은 수용할 줄 아는 용기.


다시, 단단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게 단단해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굳게 붙잡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안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단단하게 붙잡곤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게다. 흔들리고 흔들려서 다른 사람을 보며 다른 사람으로 채우고 싶었을 그 어떤 욕망. 사실 그 욕망 뒤켠에는 스스로에게 단단히 뿌리내리고 싶은 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단단해지고 굳건해져서 내가 먼저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다짐. 그 날이 오면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든든한 쉴만한 그늘이 되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함께라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직은 갈길이 멀다. 오늘 밤엔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쉬탕가를 해야겠다. 내일은, 모레는, 그리고 한 달 뒤엔 좀 더 괜찮은 내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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