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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들 Apr 10. 2021

[흡흐흡흐]10강, 코로나 시대의 홈 요가

내 작은 우주를 쓸고 닦고 가꾸는 힘


놀랍게도 이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해서 마지막 장에 오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 글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것은 요가의 이야기 인척 했지만 사실은 내 찌질한 연애의 뒷얘기이다. 그 사이 어쩐지 나도 요가의 알 수 없는 산스크리트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었고, 나름 요가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어 있다. 1년 전쯤 코로나 시국이 터졌고, 장기화되었으며, 어느새 우리는 코로나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없고, 앞으로도 코로나와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요가 수련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게 되었는데, 맨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땐 대규모 헬스장에서 GX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많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다가, 소규모 수업으로 코칭을 받다가, 전문 요가원에 등록하더니, 지금은 줌요가와 유튜브 요가를 하게 되었다. 줌요가와 유튜브 요가의 장점은 명확하다. 안전한 집에서 요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비교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에 수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점도 명확하다. 내 동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잡아줄 선생님이 없다는 점과,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집에서부터 헬스장(혹은 요가원)에 가는 길이라는데 이는 집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 요가매트를 깔기 위해 집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요가원에 가는 게 나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요가를 하려고 노력한다. 혼자서 하는 게 귀찮고 지루한 날엔 이웃 친구를 불러 함께 수련을 한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벽에 이런 낙서를 새겨 넣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요가도 마찬가지다. 요가는 혼자 해도 좋은 운동이지만, 같이하면 더 오래 즐겁게 수련할 수 있다. 매트 위에서 우리는 혼자가 되는 연습을 하지만, 수련의 앞뒤에 서로의 수련을, 삶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든다면 수련이 훨씬 더 외롭지 않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내가 사는 건물에는 마음이 잘 맞는 이웃 친구가 생겼고, 요즘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힘차게 요가로 만날 수 있는 좋은 요가 메이트가 되어 함께 수련하는 중이다. 요가를 하면서 요가 메이트의 삶과 이런저런 마음의 결을 알아가는 일 역시 함께하는 수련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사이 요가 메이트는 7년을 만난 사람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단순히 이별을 '했다.'나, 이별을 '당했다.'거나 이별을 '통보했다'가 아니라 이별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너무도 적절한 이별이었다. 스스로도 오래 준비하고, 상대에게도 이별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며, 일체감을 가졌던 두 사람이 각자가 되는 과정을 성숙하게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런 성숙한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나의 마지막은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없어서, 무서웠다. 많이 무서웠다. 의지할 돌부리 산호초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어느 날 갑자기 팔 하나, 다리 하나 짝짝으로 잘린 채로 혼자 뚝 떨어진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도 무서웠던 것 같다. 나도 우리가 서로 이별할 준비가 되었을 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서 이렇게 혼자 오래도록 글을 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2년의 수련과정을 통해 내 햄스트링은 어떻게 되었냐고? 안타깝게도 내 햄스트링은 여전히 고집이 세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놀러 와 자고 간 적이 있는데, 아침에 내가 요가 매트를 펴자 자기도 따라 하겠다고 하더니 산 자세를 정말 뾰족한 산 모양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삼각 자세는 또 어떤지. 정확히 골반을 완전히 꺾어서 그것도 너무 쉽게(이렇게 하라고? 했더니 됐다) 하는 걸 보며 마치 노력하는 둔재가 어느 날 천재를 만나고 좌절해버린 기분을 얻었지만 '그래.. 요가로 밥 벌어먹고 살 거 아니니까 됐다..' 싶었다. 요가의 기본 동작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본 동작인 다운 독 자세를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요가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다운 독 자세가 안되니 내가 언젠가 꼭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머리 서기 역시 될 턱이 없다. 머리 서기를 하기 위해선 다리가 위로 저절로 들려야 하는데 등이 먼저 굽으니 결국 데구루루 굴러 넘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이게 다 근육이 날 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젠 조급해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끝끝내 안되어도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작의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수련하는 과정이 요가 그 자체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문득 아주 오래전 파워 빈야사 수업을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다신 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뒤로 나는 빈야사 수업시간만 피해 다녔고, 인 요가나 케어링 수업만 골라 들었다. 빈야사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한참 플로우를 시키다가 이제 그만 다운 독 자세에서 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에 나는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게 쉬는 자세야? 짧은 근육들 때문에 제대로 되는 자세는 없지,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아프고 힘들긴 오지기도 하지.' 그래서 다운 독 자세로 쉬라는 말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선생님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선생님한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거 알죠? 다운 독 자세는 쉬는 자세예요~'

요즘도 여전히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저 말을 들으면 피식 웃는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게 쉬는 자세라니요~ 선생님도 참~~' 여전히 나의 짧디 짧은 햄스트링은 길어지지 않았고, 기초 동작인 다운 독 자세 역시 여전히 엉거주춤하다. 무릎이 굽거나 허리가 굽거나 둘다거나 하기 때문이다. 골반은 여전히 접히지 않는다. 그래도 이젠 같은 말을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일 년, 이년 사이 그 정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만큼의 수련이 되었던 것이다. 이 작고 하찮은 변화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내가 나의 고통과 감정을, 그리고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해 주고 있다는 어떤 자신감 때문이다. 이 사소하고 거대한 변화. 하찮지만 썩 괜찮은 날갯짓 말이다.


내가 나를 이해할 때 삶에 대한 주도권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것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이해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희망하고, 그러기 위해선 어떤 용기들이 필요한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고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나는 타고나기를 불나방처럼 태어난 인간이라, 진심인 것들에 내 전부를 태워버리지 않고서는 못 견딜 때가 있다. 다만 10대, 20대가 나도 명명할 수 없는 폭풍 같은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불은 데어 보고 나서야 뜨거운 줄 알았다면, 지금은 저기 저곳에 불이 있고, 저곳은 뜨겁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내가 들어갈 용기가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야 할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면 '아, 젠장. 또 상처를 받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섬주섬 물에 젖은 수건이라도 챙겨서 뛰어든달까. (불나방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용기 낼 일이 더 적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짧은 햄스트링이 결국 늘어나지 않았듯, 내가 삶에서 느끼는 어떤 한계로 인한 슬픔들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을 돌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때때로 삶이 불안해지거나 좌절하는 일이 생기면 쉽게 흔들리기도 하고, 삐죽빼죽한 마음이 튀어나오고 그러다가 울고 만다. 일이든 관계든 내 멋대로 잘하려고 애만 쓰면 머리 서기 무너지듯 더 엉망이 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또 왜 아직도 나는 이렇게 제멋대로일까,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이게 언젠가 되긴 하는 걸까. 실은 수용할 수도 있는 내 한계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할 수 있는데 나의 게으름 혹은 못생긴 마음 혹은 더 단순히 이기심 때문에 그런 거면 어떡하지 싶은 날엔 내가 몹시도 미워지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마음들에 '서글픔'이라는 단어를 붙여주기로 했다. 이전처럼 너무 아픈 고통에 찬 슬픔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찌할 도리 없는 슬픔으로서 간직하게 될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어나지 않는 햄스트링을 붙잡고 달래며 여전히 뭐라도 해보려는 이유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나의 요가 선생님들을 소개하고 이 긴 여정의 글을 끝내려 한다. 승마, 무에타이, 스쿠버다이빙, 클라이밍이라면 몰라도 하필 요가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선생님들이 시절마다 좋은 수련을 지도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엔 유명하고 위대한 요가 스승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제일 좋은 선생님은 나랑 가까이 있는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요가에 관심이 생겼다면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선생님으로부터 요가 수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간혹 처음부터 혼자서 요가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 그건 어쩐지 걱정이 된다. 혹시나 무리를 해서 다칠 수도 있고, 버티어 좋은 동작을 만들어 내는 것만을 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기우 때문이다. 아까 산티아고의 낙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이 말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혼자만 가면 엉뚱한 데로 갈 수 있다. 같이 가면 안전한 길로 갈 수 있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동료를 만나 당신도 즐겁고 안전한 수련을 이어가길 권하는 바이다.




회기동, 요가마로
→ 요가마로 선생님에게 처음 요가를 배웠고 가장 오래 수업을 받았다. 인요가부터 빈야사, 시바난다까지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요가라는 수련을 좋아하게 해준 첫번째 나의 요가 선생님이다.
Frip 성수, 한소정 선생님
→ 프립을 통해 예약했다. 주말을 상쾌하게(혹은 후덜덜하게) 아쉬탕가로 시작할 수 있다. 핸즈온 방식의 수업이 다정하고 인상적이다. 수업 시작할 때 우짜이 호흡으로 아주 잠깐 명상을 하면서 시작하는데 마음이 차분해진다.
성수동, SUN YOGA 진선 선생님
→ 발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의 요가원이다. 다양한 선생님의 전문적인 수업이 준비되어 있다. 요가용품들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레스토레이티브 요가와 빈야사가 인상적이었다.
선데이 나마스떼 을지로
→ 혜씨의 요가디오를 듣다가 수업도 듣게 되었다. 하타요가 수업을 들었다. 요가원에 적힌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참 좋았다.
유튜브 요가
→ 편안한 방에서 따라할 수 있어서 좋다. 단점은 강제성인데, 이건 이웃 친구와 함께하는 것으로 극복했다. 시간을 정해 이웃과 함께 요가매트를 깔고 요가 수련을 한다. 의지박약인에게 참 도움이 된다.
: 서리요가, 에일린 요가, 요가소년, 곰곰요가 예슬
들큰철, 요가할만한가요 (책, 만화)
들큰철님과는 성수동에서 일할 때 종종 같이 요가와 보드게임을(?) 했다. 만화에는 요가를 잘 못하는 것처럼 그리셨지만, 사실은 나보다 유연하고 코어 튼튼하게 머리서기도 잘하신다.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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