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원래 불편한 것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리뷰

by 권인

아이 학교 추천 도서이기도 하고, 작가 이름이 아이 친구 이름과 같아 익숙하게 느껴져 오래 전 전자책 서재에 담아 두었던 책입니다.
문득 읽고 싶어져 읽기 시작했는데,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중요한 파우치를 찾아 준 서울역 노숙자에게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를 제공하는 염 사장님, 알콜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비범한 면모가 있는 전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 성실하고 꼼꼼한 편의점 알바생 시현, 깐깐한 성격에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 편의점 알바생 오 여사. 그리고 이들의 편의점에 들르는 다양한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과 독고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져 읽는 내내 마음이 훈훈했고, 본명조차 기억 못하는 독고가 그들에게 베푸는 순수한 친절과 무심한 듯 던지는 조언이 너무 날카롭고 지혜로워서 그의 과거를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독고 씨가 편의점 진상 손님이나 지하철 안의 무례한 사람에게 바른 소리를 직설적으로 속 시원하게 하는 장면,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 (아래 초록색으로 표시)이 작품에 재미를 더해 줘서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이유가 있는 좋은 작품이어서 저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갈피


자기는 마음껏 진상질을 떨면서 남의 실수 같지 않은 실수는 따져대는 놈은 정말이지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다.

(여기서 제이에스는 '진상'을 일컫습니다.)


시현은 뜬금없이 노트에 바코드를 그리고 있는 독고 씨를 향해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
(시현이 독고 씨에게 바코드 찍는 법 인수인계해 주는 장면. 메모한다고 바코드를 노트에 그리는 사람이라니. ^^)

카누 블랙은 사장님이 마시려고 꺼내둔 거다. 시현도 오 여사도 은근 눈치가 보여 안 먹는 그것을 공유도 아닌 곰탱이가 우아한 척 마시고 있다니…… 꼴불견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 들어온 알바생이 고참 알바생들도 안 마시는 비싼 카누 블랙을 마시는 걸 보며 시현이 혼자 생각하는 장면)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양은모 옮김, 문학세계사, 2010.)

사장님의 제안을 수락한 뒤 술을 끊고 편의점 일을 시작한 것은, 아마 내 안의 마지막 생존 본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임신한 길고양이가 불쑥 사람의 집에 들어와 새끼를 낳듯이, 나 역시 살아 있어야 할 최후의 이유가 있어 알코올중독마저 잠재우고 이 피난처를 찾은 건지 모르겠다.

그녀와 아들의 관계는 심각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고, 아들은 궤도에서 벗어난 스스로의 삶에 지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궤도에 재진입하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사실 궤도에서 계속 달린다고 종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게 아냐. 사람은…… 연결돼 있어. 너가 그렇게 따로 떼어내…… 함부로 처리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절대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대체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그녀가 말했다.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마스크를 쓰자 사람들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고 감염원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바이러스일 뿐이었다. 수만 년간 지구를 괴롭혀온 그 바이러스 말이다.

"마스크가 불편하다 코로나에 이거저거 다 불편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떠들잖아. 근데 세상이 원래 그래. 사는 건 불편한 거야."


- 출처: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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