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탁에 발을 찧어 발가락에 금이 갔다

by 권권우

너무나도 순식간에 어처구니없이 발생한 일이라 설명할 것도 많지 않다. 그냥 거실을 걷고 있었고, 발이 꼬여 순간 중심을 잃었고, 아마 넘어지지 않으려 오른발을 순간적으로 내디뎠던 것 같다. 하필 거기에 식탁 다리가 있었고 의도치 않게 나는 죄 없는 우리 집 식탁에 로우킥을 날렸다. 원목보다도 단단한 합판으로 만들어진 우리 집 식탁 다리와 그냥 내 발이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내 발만 아프고 식탁은 멀쩡하다.

끔찍한 고통에 신음하며 간신히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평소에다 유난히 덤벙거리는 내게 이런 사건은 일상적이기에 여느 때처럼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유튜브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즐겨보는 유튜버 육식맨이 내가 작년에 행복하게 여행한 오스트리아 빈을 다녀온 영상을 올렸길래 집중해서 보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아까 박은 오른발을 움직였는데 어라, 느낌이 심상치 않다. 최소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아프다고? 발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뻐근하고, 걸어보니 확실히 뭔가 잘못됐다는 게 느껴졌다. 그냥 근육이 좀 놀란 걸 수도 있으니 내일까지 상태를 좀 보고 그래도 안 좋으면 병원에 가자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엔 병원에 사람이 많고, 진료 시간은 짧다. 재수 없으면 진료를 못 받고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냥 그날 오후에 바로 병원을 향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발가락 뼈에 금이 갔단다. 의사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이 정도면 꽤 아팠을 것 같고, 발가락 골절은 심하면 수술도 필요하다더라. 다행히 발가락이 부러진 건 아니고 살짝 금이 간 수준이라 수술이나 깁스는 안 하고 그냥 옆에 멀쩡한 발가락을 부목 삼아 테이핑만 했다. 병원 안 가고 뻐팅기다가 더 심해졌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고, 심한 골절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 없음은 천만다행이지만 그런 생각은 다친 지 3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아주 열이 받았다. 일단 다친 금요일 저녁만 해도 약속이 있었고, 다음날 토요일 낮에도 일정 있었고 그다음 목요일엔 부산에 놀러 가려고 했는데 그걸 다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뭐 무리하면 할 수 있었겠지만 최소 4주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원만하게 (사실 의사 선생님은 6주라고 했지만 그냥 내 맘대로 4주로 줄이고 싶다) 회복할 것 아닌가.

고작 발가락 하나일 뿐인데 걷는 일에 꽤 큰 제약이 생기고, 잘 걷질 못하니 모든 일에 다 조심스러워진다. 집 근처 카페까지 걸어가는 것마저도. 사지 멀쩡한 것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되새긴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 계시지 않다는 사실에 벌써 익숙해졌나 보다. 일희일비는 좋지 않다지만,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일에 아낌없이 감사해하고 싶다. 발이 다 나으면 또 잊게 될 어리석은 나야, 가끔씩이라도 이 이야기를 떠올려 주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