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던 3일 동안, 나는 입구에서 부의금을 받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중요한 일들은 모두 어른들의 몫이었고 (내 나이가 이미 성년을 훌쩍 넘겼다는 건 덮어두자) 내가 한 일은 딱히 어렵거나 힘든 일도 아니었지만 예상 외로 그건 굉장히 체력 소모를 요하는 일이었다.
장례식 복도를 걷는 모든 사람들을 보며 혹시 우리 쪽 조문객은 아닌가 체크하고, 손님이 올 때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부의금을 받고 방명록 쓰는 것을 안내하고, 신발이 너무 쌓여있으면 그것들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손님들한테 또 인사하고 주차권을 챙겨드리고 장례식장 직원들이 건네는 각종 영수증을 보관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챙기느라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또 고팠다.
어릴 때부터 많이 먹는 편이었던 나는 군대에 가서 15kg 가량 살이 빠진 이후에는 먹는 양이 줄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 줄었다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잘 먹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근데 한 번 많이 먹기 시작하니까 다시 위가 늘어서 계속 많이 먹었고 그러다 보니 영 찌지 않던 살이 다시 찌더라. 혹자에겐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한 번 살이 훅 빠지니까 많이 먹어도 쉽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계속 뭘 먹으니 찌긴 쪘다.
헌데 이상한 것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무언갈 입에 물고 있지 않으면 어색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왜 그런 거지?
장례식을 치르며 늘어난 위장과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공허가 합쳐진 결과인 것 같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제 고작 스물여섯 살이지만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벽이 사람들에게서 느껴진다. 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나도, 사람들도 그 동안 인간관계를 맺으며 쌓아온 각자의 경험치가 있다보니 쉽사리 무장해제하고 있는 그대로가 되기가 어렵다. 알아온 시간의
크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계산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던 때 알게 된 사람들과, 사람을 대할 땐 어느 정도 겁을 먹고 시작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난 뒤 알게 된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럼에도 기꺼이 가깝고 깊은 관계가 되고 싶은데, 사람들은 거리를 두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나도 누구 못지 않게 벽을 두고 곁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좋은 사람이라면 언제 알게 됐건 죽마고우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안 그래 보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우니, 새로운 사람들을 찾기보단 원래 알던 사람들하고 잘 지내야 하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가 않다. 가는 길이 달라지고 접점이 사라지면 신기할 정도로 순식간에 멀어지기도 하니까. 그럼 혼자서 잘 서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게 가장 안정적인 답인데, 어째 외로움이 잊을만하면 찾아온다.
사람한테 집착하지 말고 혼자서도 행복할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데, 그럼 외로움도 자연히 같이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외로움은 하나도 줄지가 않는데 관계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건 좀 너무하잖아. 아무리 인생이 그 자체로 고행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러냐.
다른 것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공부를 하든 악기를 연주하든 글을 쓰든 영상을 만들든. 몰두할 것을 좀 찾아봐야지. 채워지질 않는 신체적 허기와 정서적 공허감을 나름대로 조금씩이라도 채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