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할 체력

by 권권우

눈앞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고 마음 상하지 않게 배려하고, 함께 속도를 맞추는 일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 줄 몰랐다. 늘 당연하다는 듯이 해왔던 일이 이렇게 하기 싫고 피곤해지다니.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는 걸까? 아직 서른 살도 안 됐는데 이러면 어떡하라고.


알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싶지도 않다. 부끄러움을 참고 먼저 다가가는 일은 아예 해본 적도 없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다. 혼자 있는 게 참 외롭고 아팠는데, 함께하다 혼자가 되는 기분을 느끼느니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거짓말했다.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 잘 논다고. 그런데 나는, 진짜 원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최대한 오래 길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매일같이 만나도 사실은 좋다. 아예 같이 사는 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같이 시간을 길게 보내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진 적은 거의 없다. 근데 그냥 상대는 어느 정도 되면 집에 가고 싶어 하니까 내가 선수를 치는 것뿐이다. 그만 일어나자고. 나는 사람 같은 거 믿지 않는 냉소적이고 냉정한 그런 인간 같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 관심, 인정 따위에 늘 목마르다. 그래서 항상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노력한 것 같은데 곁에 남은 사람은 별로 없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해 봤는데 아무도 그걸 제대로 봐주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노력하기 시작한 거니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노력해도 안된다면 더 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돼 보면 어떻겠냐는 말은 참 훌륭하고 아름답고 교훈적이다. 근데 그걸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겠지. 일단 지금은 그런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다.


지쳤다. 조금 많이 지쳤다. 인격적 성숙을 향해 가는 것도, 번듯한 직업을 갖추려 하는 일들도, 경제적 기반을 만드려 하는 것도. 하나같이 모두 지겹지 않은 것이 없다. 대단히 열심히 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 놓고 하고 싶은 대로만 막 산 것도 아닌데. 차라리 그냥 제멋대로 살아라도 봤으면 똑바로 정신 차릴 수 있었으려나.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는 다시 괜찮아질 것을 안다. 지금 이렇게 가라앉고 있지만 다 손 놓고 자빠지지는 않을 것도 안다. 그래도 괜찮다면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냥, 또 하루하루 살다 보면 이 거지 같은 기분도 희석이 되겠지. 이런 기분, 살면서 무수히 많이 느껴봤으니까. 근데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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