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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내보이는 일이란

by 권권우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가끔은 내가 꽤 중심이 단단히 잡혀 있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내 기분이 괜찮아서 그런 거고, 조금만 어긋난다 싶으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바로 불안에 휩싸인다. 내 말이 혹시 오해하게 만들었을까, 뭔가 실수한 것은 아닌가, 혹은 내가 누군가를 오해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를 무뚝뚝하고, 감정 기복이 적고,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겁이 없는 이로 여긴다. 물론, 그 모습 역시 나의 일부이다. 보통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감정보다는 이야기의 사건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공감능력이 낮은, 소위 말하는 대문자 T 같은 발언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실제로 mbti 검사를 하면 늘 t가 나오곤 한다. 겁이 없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다.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이나 무서운 이야기, 영화 등을 접할 때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한다. 실체가 없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가 않다. 적어도 내가 직접 귀신같은 존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모습은 일종의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는 한 번 정을 준 사람과 멀어지는 것이 너무 힘든데 많은 사람들이 인연의 지나감을 자연스레 여긴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나를 전혀 그런 이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주지 않을 것이 무서워서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불안함이 느껴질 때면 먼저 도망치곤 한다. 버려질 것이 무서워서 먼저 버리고 숨어버린다. 어차피 닿지도 않을 마음이라면 보여주지 않고 숨기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그냥 그렇게 믿었다. 어차피 우리가 곧 멀어지게 될 거라면 나는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다. 남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겐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남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 보니 더 차가운 말로, 무심한 얼굴로 나를 숨기고 싶다. 약하고 징징대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보단 공감 능력 없는 냉혈한으로 여겨지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 그러면 상처받을 일도 적으니까.

분명히, 이런 태도는 잘못됐다. 이건 옳지 않다. 이런 나에게도 가끔 진실하게 다가와 주는 누군가를 보면, 그 사람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고 그러다 보면 또 후회가 든다. 그냥 아프더라도, 상처받더라도 다 감수하고 한 번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어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든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에겐 네가 정말 소중한 인연이고, 나는 너와 쉽게 멀어지고 싶지 않으니 곁을 내어달라고. 한 번이라도 그렇게 말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더 큰 상처를 받고 지금보다도 더 위축된 내가 되어 있었을까? 답은 모른다.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용기가 부족해서, 당당해지기엔 받은 상처가 많아서, 쉽게 말해 아주 찌질해서 자신 없다. 계속 이렇게 내 마음에 비친 내 안의 모습을 숨기고만 살 것도 같다. 언젠가는 나도 인연의 멀어짐과 가까워짐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그렇기에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이 되도록이면 빨리 내게 찾아와 주길 바란다.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 내고 또 잊어버리고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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