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좋아하는 이유

by 권권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창작물을 볼 때 해피엔딩을 딱히 바라지 않게 됐다. 오히려 비극으로 끝나는 게 더 인상적으로 남을 때가 많았다. 분명히 캐릭터에 몰입도 하고 있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한데도 그랬다.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극적인 전개를 위해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그 안 좋게 흘러간 상황이 얼렁뚱땅 해결되는 게 싫었다.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되는 결말을 보느니 그냥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 싶었고, 그런 식의 억지 해피엔딩을 갖춘 작품이 너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드엔딩을 선호하게 됐다.


전에 없이 깊게 몰입해서 봤던 소설 원작의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딱 그랬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두 주인공 홍과 준고가 제발 사랑을 이루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랐었는데, 마지막 두 사람의 재회가 이해가 안 가서 몰입이 깨져버렸다.

홍은 준고 때문에 약혼도 깨버렸으면서 준고 앞에선 곧 결혼할 거고 남자친구가 기다려서 가봐야 한다고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준고는 그런 홍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꼭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 뒤 잡지 않고 홍을 보냈고. 근데 그렇게 헤어져 놓고 왜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준고는 또 홍의 집으로 찾아가고 홍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준고를 맞이하는 건데. 그럴 거면 그 전날에 맘에 없는 소리하지 말고 속마음을 다 털었어야지. 아니면 홍이 준고를 찾아가서 붙잡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 원작도 드라마판도 비슷한 결말이라서 아직도 나는 이 결말을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에 둘이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한 건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계속 돌려보고 있지만, 그 결말부만큼은 다시 보고 있지 않다. 거기만 보면 몰입이 깨져버린다.


이렇듯, 쉽게 다른 것을 믿지 않는 내 성격은 문화 생활을 온전히 향유할 수 없게끔 방해하고 사람을 까다롭고 예민하게 만든다. 이런 내 자신이 나도 피곤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보는 이를 완전히 설득시킬 수 있는 완전한 해피엔딩의 작품이 많았다면 굳이 시상식을 열어 최고를 골라야 할 필요도 없을 거고, 모두가 차갑고 현실적인 작품만 만든다면 문화 생활 자체가 의미 없을 거라고. 다 큰 어른들은 여전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현실감 없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열광하고, 여전히 게임 속에서 창공을 가르고 괴물을 물리친다. 그것들이 다 허무맹랑하고 바보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나? 그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소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완전한 설득력을 갖추고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던질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였다면 최고가 최고로 존재하지도 않겠지. 그러니 복잡한 생각은 내려두고, 그냥 보자. 현실감이 없는 게 당연하지,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 정확한 현실을 보고 싶으면 창작물 말고 다큐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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