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착각도 약이 된다

꿀땅콩과 나의 플라시보 효과

by 메종무던

하루 여덟 가지 영양제를 챙겨 삼킨다.

서랍 속 알약 통이 달그락거릴 때마다 골골한 체질이 겨우 지탱되는 기분이다.


효능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검증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방패였다.

불안은 삼킨 순간 줄어들었고, 안도감은 약효보다 먼저 찾아왔다.


옆자리 동료 한 씨는 달랐다.

여름 식중독에 사무실이 줄줄이 쓰러질 때도 멀쩡했고, 독감이 휩쓸던 겨울에도 끄떡없었다.


그녀의 건강 비결은 단출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그 단순한 생활이 모든 약을 대신할 비결이란다.


점심 후 내가 알약을 삼키면, 그녀는 바나나를 건네며 말했다.

“약보다 하나라도 더 먹는 게 낫지.”


짧은 문장에는 흔들림 없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점심으로 두부찌개를 배부르게 먹은 뒤, 그녀가 작은 봉지를 꺼냈다.

“견과류라도 챙겨야지. 치매는 무섭잖아.”


오독오독 씹는 소리가 묘하게 당당했다.


늦여름 바람이 부는 길을 나란히 걸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끝은 늘 같았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자꾸 살이 찌네.”


투덜거린 건 나였지만, 그녀도 곧장 동의했다.

“체질상 살은 잘 안 찌는데, 이번 달엔 뱃살이 늘었어. 그래도 견과류 덕분인지 머리는 개운해.”


그녀의 웃음 뒤로, 단단하던 체형이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오후 세 시, 사무실이 잠잠해질 무렵 작은 봉지가 내 앞에 놓였다.

늘 거절하던 습관을 멈추고, 하나 집어 들었다.


오도독—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건 고소함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달콤함이었다.


“이게 뭐야?”

봉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정체는 ‘꿀땅콩’.


“어쩐지 살이 찌더라니…”


민망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 후로 꿀땅콩은 더 큰 봉지로, 늘 그녀의 가방 속에 자리를 잡았다.


퇴근길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피부에 좋다고 알려진 건강 보조제가 사실은 아무 효과가 없어 판매 중단을 당했다는 보도였다.


낯설지 않았다.

세 달째 꾸준히 삼키고 있던 바로 그 약이었으니까.


할부까지 끊어가며 ‘투자’라 믿었던 약.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피부가 윤기 있어졌다며 스스로 안도하던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약효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 빛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웃음이 났다.

꿀땅콩을 건강식이라 믿던 동료 한 씨가 생각난다.


내일 회사에 가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나도 가짜약에 속았는데, 신기하게도 피부가 반짝인다니까.”


믿음 하나가 약이 되고, 착각 하나가 위로가 된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믿는 것을 삼키며 하루를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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