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향기를 품다
눈물도 오래 가두면 꽃이 된다 겨울
물병자리 남자가 무릎을 꿇는 시간, 바람은 분주히 시침을 돌리고
눈보라들은 사스레나무 숲으로 갔다 흰 수피의 나무들 몸속 심지를 돋운다
전생을 건너온 순백의 영혼들
속수무책 등고선을 오르는 술렁임의 난청 속에서도 먼 우주 밖 소리에 귀를 세우며
이름 모를 성좌의 기원을 짚어가고 있다
지금은 휘몰아치던 소용돌이를 잠재운 채
살얼음 진 허공의 음계를 밟고 꽃으로 돌아가는 시간
유목의 피들이 고요의 주술을 걸며 도드라진 잎맥을 새긴다
수직의 벼랑을 세워 만든 울음의 방
촉수 낮은 불빛을 따라
오래 떠돌던 그리움이 귀가한다
숭어리숭어리 환한 이마를 가진 당신
툭툭 끊어진 길 위로
아슴아슴 잎맥을 타고 오는 날숨은 그대를 향한 슬픈 고백이어서
그 나라에 닿기도 전에 속절없이 사라지는 운명이지만
나는 또 비탈길에서
우듬지마다 시린 바람의 향기를 품는다
동공에 스민 눈물 한 점으로
-이현서 시집 『구름무늬 경첩을 열다』에서
시인은 언어의 힘을 믿는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속도의 틈이나 균열 속에서도 지속하는 영롱한 빛, 그것은 사랑일 수도 윤리일 수도 있다. 내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언어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결이 상상력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세상의 이면으로 스며들 때 근원으로부터 오는 슬픔 또는 결핍도 숭고한 마음으로 상승해 간다.
이현서 시집 『구름무늬 경첩을 열다』는 어디로 갈지 모를 한 세계가 세계의 마음인 슬픔과 그리움을 쓰면서도 그 너머 기원을 짚어보는 숭고의 미덕을 보여준다. 시집의 기표들은 경이롭다. 독자들은 낯선 흔들림으로부터 ‘무반주 첼로 모음곡「아픔1」’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실루엣에 사로잡히다가도 「바람이 향기를 품다」에서 신비스런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순수했던 사랑을 잊지 못한 시적 화자는 사스레나무 숲을 찾아가 순백의 얼음꽃을 본 것일까. 오래 가둔 눈물이 꽃이 되는 내력을 알게 된다. 환하게 피어났으나 닿을 수 없음도 고백한다. 그것은 필멸의 세계일지 모른다. 고지에서 눈보라를 견디는 사스레나무도 나무로서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지만 피를 가진 생명체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한다. 그럼으로써 소멸해간다. 사스레나무로 치환된 주체 또한 마찬가지로 대지에 붙잡힌 존재다. 세계를 확장해가지만, 눈보라의 생명력 넘치는 욕망이나 꽃핌을 무화해 가는 운명이다. 천천히 자신과 사랑하는 대상도 지워가게 된다. 사랑이 거기 있었으나 사라지고, 기다리고, 다시 시작해도 아무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그래서 기원을 짚어본다. 우리는 거기서 그렇게 시작된 것일까?
들뢰즈는 예술의 목적은 무한한 실재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한한 실재란 우주이다. 그리고 그 본질이 시간이라고 볼 때, 예술의 본질은 사랑과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다 죽는 것에 대한 삶이 삶(예술)을 되게 한다. 사랑은 끝내 죽음으로 만난다. 이별과 상실로 인한 부재도 마찬가지다. 부재의 슬픔은 스스로 삶을 횡단하지 못한다. 혹독하게 인내하고 슬퍼하며 눈물꽃을 환하게 피우는 애도의 과정을 통해 극복된다. 그리고 무에서 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시를 끌고 가는 문장의 에너지는 사물(존재)을 인식하는 지각뿐 아니라, 대상에 축적된 주름과 시인의 경험 그리고 심상이 만들어 낸 상상의 힘이다. 탁월한 상상의 연상이 꼬리를 물고 신비한 얼굴을 드러낼 때 우리는 이름 모를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끊임없이 기원을 짚어보는 시인의 기표들이 시의 지층을 경이롭게 하지 않는가. 언어의 힘을 믿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