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히틀러와 스탈린은 정치적 이념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반대파를 철저히 제거하며, 국민을 강력한 이데올로기 아래 통제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와 시진핑도 다를까?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과 일당 독재 국가의 지도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대중 선동, 그리고 정치적 야망에서 상당히 닮아 있다.
트럼프는 법과 제도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고, 시진핑은 아예 법과 제도를 바꿔가며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기존 질서를 흔드는 도전적인 태도를 보였고, 시진핑은 일당 독재 체제에서 권력을 더욱 집중시켰다. 둘 다 "자신만이 국가를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며 대중을 선동했다.
경제적으로 보면,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했고, 시진핑은 국유기업 중심의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강화하며 중국 경제를 완전히 정부의 손에 두었다. 트럼프는 기업과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줄이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전쟁을 벌이며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진핑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를 당의 통제 아래 두고 있으며,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조차 중국 시장에서 정치적 충성심을 요구받는다.
또한, 두 사람은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에서도 닮아 있다. 트럼프는 SNS와 직접적인 대중 소통을 이용해 기존 언론을 배제하고 자신의 서사를 직접 주입했다. 시진핑 역시 언론을 완전히 통제하고, 공산당 선전 기구를 활용해 본인을 신격화하며 국가의 유일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했고, 시진핑은 아예 독립적인 언론을 불허하며 모든 미디어를 통제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트럼프는 미국의 제도적 한계에 부딪혔지만, 시진핑은 제도를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패배했고, 1·6 의회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여러 법적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 시진핑은 헌법을 개정해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고, 모든 정치적 경쟁자를 숙청했다. 트럼프는 권력을 놓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있었고, 시진핑은 권력을 놓지 않도록 구조 자체를 바꿨다.
그런데 이제 트럼프 2.0이 시작되었다. 그는 1.0 시절 실패했던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장벽에 막혔던 경험을 통해, 이제는 그 장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트럼프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고도 조용히 시스템을 재편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쿠데타의 방식이다. 제도 자체를 변형시키면서도 민주주의의 외형을 유지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국내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트럼프는 푸틴과 협력하며, 우크라이나가 빠진 종전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전쟁을 이념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닌 '거래'로 바라본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적 지원에 대해 5,000억 달러를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는, 트럼프의 세계관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도덕보다 이익, 정의보다 거래. 그는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만들고 있는 미국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까?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이 지켜온 가치들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자본과 힘의 논리만을 앞세운다면, 약소국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세계 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힘 있는 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세계관이 확산된다면, 그 피해는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더 깊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이윤을, 민주주의는 평등과 공공의 이익을 지향한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국가는 건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자본주의로 쏠리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거친 흐름을 견제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균형을 잡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역사는 반복된다. 자본이 민주주의를 압도할 때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생겨났다.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이 등장했고, 시민운동이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정책 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 자본이 결합하며, 기존의 견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균형을 되찾는 힘은 단순히 정치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절망적인 시대일수록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불확실하고 위험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저항과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존재할 것이다. 과거처럼, 사람들이 다시금 ‘무엇이 옳은가’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힘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균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결국 희망은 우리가 잃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