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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의 이사, 나는 그만큼 성장했다.

by 권상민

회사를 2019년 7월 12일에 시작하고 오늘로써 7번째 이사를 하는 날이다.


성수→신논현→삼성역→교대역→선정릉역→가산디지털→선릉역


이렇게 7곳을 거쳐서 오늘 선릉역으로 가게 된다.

창업 6년 넘는 기간동안 7번의 이사라니,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늘 글을 쓸 때마다 미안함을 언급하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많은 사람을 채용도 했고 두 번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떠나 보내기도 했다.


초보 사장의 실수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큰 출혈이 있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큰 손실이 있었다.

그런 아픔과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그래도 회사는 지속적으로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고는 자평해본다.

그 결과 IT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릉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이 시점이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창업을 안 했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삼성화재에서 책임급으로 퇴사를 했으니, 7년이 지난 지금 세 가지 경로이지 않을까 싶다.

첫째, 부장을 달고 승승장구해서 삼성화재에서 임원까지 도전한다.

둘째, 부장이 안되고 수석급으로 남아서본인의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한다.

셋째, 많은 삼성 선배들이 타 보험회사 임원으로 가신 것 처럼, 새로운 보험회사에서 임원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의 옵션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봤다.


지금의 내가 보험회사의 임원급보다 더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상태가 아닌 것은 맞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더 큰 꿈과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맞다는 확신이 있다.


지금까지 등록된 명함이 1,206명이다.

정말 무수히 많은 회사, 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내가 가진 기술, 서비스를 팔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썼다.

투자 유치의 과정도 결국 세일즈였다.

좋은 인재를 모시는 과정도 세일즈였다.


어찌 보면 내가 6년 넘는 시간동안 얻은 것은,

온 몸과 마음에 체화가 된 영업력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각도로 영업의 접점이 이뤄지고 있다.

고객사마다 요구사항은 다 다르다.

그러나, 다 맞춰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으니까.

그런데 이런 과정이 힘드냐?

즐겁다.

전혀 힘들지가 않다.

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요구조건의 고객과 만나고 일을 하는 이 환경이 나는 행복하다.


6년동안 내가 세일즈 해야 하는 품목도 계속 변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제품, 서비스, 투자유치, 인재유치 등.

그리고 다시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는 내가 세일즈를 해야 하는 품목이 더 늘었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내 명함을 보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이 ‘미국보험계리사ASA’라는 문구였다.

미국 농담중에 계리사들은 상대와 이야기 할 때 얼굴을 안 본다고 한다. 발끝만 쳐다본다고. 그 정도로 수줍음이 가득한 성격을 표현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수줍음이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미국보험계리사를 도전한 것도 치열함에 대한 도전이었다. 수학을 금융에서 활용할 때 가장 어렵다는 보험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을 끝내보겠다는 그런 의지에서 8년 이상이 걸려서 땄었던 자격증이었다.


이런 내가 숫자에 대한 집착, 집요함과 더불어, 6년이 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과 회사를 만나면서 모난 데 없이 둥그런 영업력의 사람이 되었다.


창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온 세상을 다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런 꿈을 꿔야만 하는 줄 알았다.

오히려 이제는 매우 차분해졌다.

실제 그릴 수 있는 꿈을 먼저 그리고, 차근차근 달성하겠다는 노련함과 여유 정도는 생겼다.


보험업계에서 25년 일을 했지만, 아직도 성장중인 것 같다.

그렇게 꿈을 꿀 수 있어서 다행이고, 해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환경, 여건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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