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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절대 퇴직금은 건드리면 안되요

by 권상민

요즘 대기업을 퇴직하는 선배님들을 종종 뵐 일이 있다.

그 선배님들 입장에서 나는 6년전에 삼성화재를 스스로 퇴직해서 창업을 한 사람이니까 묻고 싶은 내용이 여러가지로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만난 선배님과도 몇 달 후 다가올 퇴직 후 플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뭐 먹고 살거에요?가 나왔고 선배님께서 아무개 누구와 공동 창업해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거다.

나는 대번에 말씀 드렸다.


“절대 퇴직금은 건드리면 안되요”


공동 창업하려는 사람이 이미 한 사업으로 성공해서 어느 정도 돈도 있는 분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사무실 내고 집기 등등은 이 선배님이 맡아서 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뜯어 말린 것이다.

평생 해왔던 업을 기반으로 창업을 하더라도, 직장생활과 창업가의 삶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근데, 시작도 해보기 전에 초기자금을 투자하고 돈을 쓰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말씀 드렸다.


나는 커피 창업을 예로 들면서, 커피가게 사장이 되려는 데 전체 구조를 다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

홀 서비스, 커피콩 볶는 것, 자재 조달, 가게 레이아웃 등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한 바탕에서, 더 나아가서 남들과 조금이라도 차별화한 무언가를 줄 수 있을 때 커피 가게를 차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커피 가게를 차리고 싶은 사람은 어찌 해야 하는가?


일단 배우러 가야겠지

돈을 주고서라도 커피 가게의 모든 구조와 원리를 배울 수 있으면 좋지만 사실 그런 곳은 없다.

그리고 절대로 초기자금 없이 해내야 한다.

이럴 때는 몸으로 때우고 시간이 내 편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

만약 어느 커피 가게에서 최저시급 기준으로 월급 200만원만 주더라도 돈 받으면서 허드렛일 이라도 할 수 있으면 주저없이 해야 한다.

커피가게 설거지 담당이라도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워야 한다.

일단 진입을 해야 한다. 발이라도 슥 밀어 넣어서 그 동네 사정이 어떤지 알아야 한다.


최저시급으로 월급을 받으면 대략 세전 23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선배님께도 말씀드렸다.

이제 억대 연봉을 받던 시대는 잊자. 지금은 월급 230만원만 받아도 얼마나 소중한지 그 가치를 절대 잊지 말자고.


그래서, 선배님께는 창업하시려고 하는 그 업종에 어떤 회사를 다시 들어가시라고 했다.

선배님이 대기업에서 쌓았던 지식은 충분히 있으시니까 그쪽 작은 회사도 당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그리고 연봉은 욕심내지 말고, 월급 230만원 이상만 주면 무조건 다니시라고.

지금은 내 사업을 위해서 하나하나 배우러 가는 것인데, 돈도 주니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결론적으로, 선배님은 지금 창업을 준비하면서 중간급의 그 업종의 회사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계시다.




창업 사실 너무 어렵다.

뉴스기사 잠깐 찾아보니 매년 10만개 이상의 법인이 설립되는데 5년 생존율이 40% 이하라고 한다.

자영업자 이야기가 아니라, 법인으로서 창업한 경우의 이야기다.

나 개인적으로도 창업하고 6년동안 세상의 시련을 어느정도 겪고나니 주위에 말하는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쉽게 투자받고, 손익 개념도 없이 처음 사업하던 3년은 세상이 다 달콤한 줄 알았다.

그때는 주저없이 당신도 창업해라,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투자받을 수 있다. 그렇게 말했다.

그 이후 시련기 3년을 겪고 나니 이제는 좀 많이 말을 자제한다.

창업하라고 하는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누가 창업하겠다고 하면 같이 아이템 점검 정도는 해준다.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앉은자리에서 질문을 100개 정도 해본다.


세상 제일 쉬운 일이 훈수 두는 것이고, 남의 일에 대한 참견, 관여다.

지금 들고 오신 이 아이템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나요? 시장은? 경쟁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질문을 하면 어딘가에서 막힌다.

사실 창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같은 초심자가 오늘 처음 본 주제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해도 완벽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이야기 들은 지 20분 밖에 안된 주제를 질문하는 데 여기에서도 막히면 죄송하지만 그 분은 창업하시면 안된다.

이래서 내가 자꾸 창업한다고 헛바람 들어간 분들을 말리는 것이다.

좀 더 준비하셔야 합니다.

더더더! 완벽해지셔야 합니다.

세상 누가 이 주제로 질문을 해도 완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돌려 보낸 분만 올 해도 5명이 넘는다.


지금도 경기가 안 좋고, 심지어 내 친구가 재직중인 LG전자는 50세부터 명예퇴직을 실시한다고 이야기가 나온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국 당신이 퇴직을 하게 된다면 절대로 그 돈은 건드리지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허드렛일도 좋으니 일단 내부자가 되어서 그 업종으로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라도 배우시길 바란다.


삼성화재 다닐 때 선배님이 이런 표현을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결국 다 치킨집에서 만날거잖아”

삼성을 다니는 사람도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시대이긴 하다.


퇴직의 상황을 직면했거나, 걱정이 되는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용기를 드리고 싶다.

우린 정말로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퇴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지금부터라도 차분하게 한 가지 일을 파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면 된다.


최저시급을 주면서 일을 시키는 곳은 찾아보면 정말 많다.

관점을 바꾸자. 돈도 벌고, 일도 배운다. 내 제2의 인생을 이렇게 시작한다.

내 자산(퇴직금)은 함부로 허물지 않겠노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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