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나는 어려서 납치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몇 학년이라는 기억은 없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내 또래 동네 친구와 나보다 어린 동네 동생들 두셋을 데리고 놀던 때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 박스 공장이 있었다. 공장 입구 경비실 옆에 폐박스를 쌓아 놓은 넓은 공터가 있기도 했다. 박스를 빈틈없이 채워 놓아서 땅바닥에서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내 허리 정도까지 박스가 항상 두껍게 쌓여 있었다. 어린애들에게는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마치 트램펄린 베드(어렸을 때는 '퐁퐁이'라고 불렀다.) 위에서 팡팡 뛰는 것처럼 쌓여 있는 박스는 탄력이 있었고 더구나 종이이기 때문에 넘어져도 다칠 일이 별로 없어 비교적 안전했다.
공장 아저씨들도 아이들이 놀아도 좋을 만큼 위험한 요소가 별로 없다고 판단이 됐는지,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노는 걸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으며 어떤 젊은 아저씨들은 아이들이 박스 위에서 팡팡 뛰고 있으면 같이 올라와서 뛰다가 까르르 웃기도 했었다. 그런 아저씨에게 달려들어 같이 놀자고 덤비다가 아저씨가 나나 내 또래 아이들을 번쩍번쩍 들어 하늘 위로 던져 올려주기도 했었다. 학교 운동장에 놀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운동장은 늘 축구를 하는 애들 차지였고 방과 후에 학교에 계속 있기도 싫었으며 무엇보다 박스 공장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박스 공장은 우리 동네 사는 꼬마들 전용 놀이터가 됐고 인근 동네에 소문이 퍼져 우리 동네까지 놀러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박스 공장 아저씨들은 나를 비롯해서 우리 동네 꼬마들 얼굴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날도 방과 후에 자연스럽게 모인 동네 친구와 동네 동생들과 함께 박스 공장에서 팡팡 뛰어놀려고 어울려 걷고 있었다. 박스 공장이 동네 바로 옆이기는 했지만 아이들 걸음으로 5분은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날씨가 무척 더웠고 우리 모두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곧 눈앞에 펼쳐질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박스 위에서 뛰어 놀 생각을 하니 까르르 웃고 장난치며 걷고 있었다. 인도와 도로가 딱히 구분이 없는 도로를 지나야 해서 놀러 갈 때마다 부모님들에게 단단히 주위를 받고 맏형 격인 나에게는 동네 아줌마들이 동생들 잘 데리고 놀다 오라고, 차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기 때문에 나는 골목대장이라도 된 듯 아이들을 통솔해서 박스 공장으로 향했다. 되도록 도로와 멀리 떨어져 벽에 일렬로 걷다시피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서로 앞뒤에서 도망가고 잡고 치고 빠지고 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자동차 한 대가 서행하며 조수석 창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어깨까지 내려온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 눈에도 내가 제일 형으로 보였는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얘! 어디까지 가니? 아줌마가 차 태워줄 테니까 타라."
본능이란 것은 놀라운 감각 같다. 나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위협적이고 무섭게 들렸다. 아줌마가 짓는 눈웃음도 좋게 보이는 게 아니라, 백설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먹이려는 마귀할멈의 비굴한 미소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번에 표정이 굳어서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동시에 동네 동생들을 모두 내 뒤로 숨기고, 내 또래 동네 친구에게도 아줌마 말을 절대 따르면 안 된다는 표정을 보냈다. 동네 친구가 나처럼 동네 동생들 앞에 서며 우리는 방어막을 쳤다.
"아니, 왜들 그래? 차 태워준다니까, 어서 타! 날씨도 덥잖아."
아줌마는 조수석 창문을 완전히 다 내리고 머리를 바깥으로 빼서는 나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운전석에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있었고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어른들이 아무도 없었다. 마침 오가는 차도 없었기 때문에 아줌마가 탄 차는 계속 서행하면서 우리 모두를 휩쓸어 갈 것처럼 굴었다.
"우리 박스 공장 갈 거예요. 조금만 걸어가면 되고, 다 왔어요. 괜찮아요. 걸어갈 거예요."
아마 내가 위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박스 공장이 바로 눈앞이었고 차를 타고 내리는 시간이면 박스 공장에 도착할 것이니 실제로 차를 얻어 탈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더 의심스러웠고 절대 차를 타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하고 동네 동생들을 뒤로 더욱 숨겼다. 아줌마가 호의를 베푼 것일지도 몰랐다. 땡볕이 내리쬐는 도로를 걷고 있는 어린애들이 위태롭게 보여 가는 데까지 태워줄 수도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박스 공장은 정말 바로 앞이었다. 아이들하고 뛰면 30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까지 왔다. 그러니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내가 긴장을 해서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으니 동네 동생들도 겁을 먹고 내 뒤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가 그런 내 모습에 마음이 상해서, 자신을 납치범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내 모습이 고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 우리를 어떻게든 차에 태우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봐도 차를 탈 거리가 아니었다.
"땀나잖아, 너희들. 바로 앞까지 태워준다니까. 얘들이 말을 못 알아듣네."
차가 멈췄고 아줌마가 차에서 내리려는 동작을 했을 때, 공장에서 우리와 함께 놀아주던 공장 아저씨 한 명이 뭉쳐서 서 있는 우리를 보고 말을 걸었다.
"뭐야? 왜?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아저씨가 겁먹은 내 표정을 보더니 얼굴이 굳은 채로 우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성인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아줌마가 조수석 창문을 재빨리 올리고, 차는 우리 옆에서 '부르릉' 급 페달을 밟으며 쏜살같이 달려 사라져 갔다. 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동네 동생들이 내 허리께를 붙잡고 다들 얼굴을 묻고 있었다. 박스 공장 아저씨가 달려오면서 우리들이 안전한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사라져 가는 자동차를 쳐다봤다. 저 사람들 뭐냐고, 아는 사람들이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나는 울상이 되어서, 어떤 아줌마가 바로 눈앞에 박스 공장이 있는데도 자꾸 우리 보고 차에 타라고 했다고, 예감이 이상해서 차에 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고 말했다. 내가 그 말을 하고 나니 내 또래 동네 친구도, 동네 동생들도 다들 한 마디씩 하면서 이상한 아줌마가 자꾸 차에 태우려고 했다고, 타기 싫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자꾸 타라고 했다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바로 코앞이 공장인데 무슨 차를 타냐고 별 미친 여자를 다 봤다고 혼자서 욕을 하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 차를 함부로 타면 안 된다고 어린 동생들 앞에서 형 노릇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했다. 나는 박스 공장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고, 아저씨도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오늘은 집에서 놀라며 우리를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동네 동생들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앞서 있던 일들을 아줌마들에게 전달했고, 퇴근하고 집에 온 아버지에게도 말했다. 그 뒤로, 동네 아줌마들끼리 말들이 오갔는지 우리는 박스 공장에 갈 수 없게 됐다. 가면 혼난다고 나도 아버지에게 말을 들었던 걸 기억한다. 무엇보다 그 이후, 박스가 쌓여있던 빈 공터에 박스가 쌓이기가 무섭게 큰 트럭이 와서 치워갔기 때문에 가서 놀기도 마땅치 않게 되었다.
이것만 가지고 납치될 뻔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날 내가 느낀 생경한 두려움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 자동차를 탔다면, 우리 대여섯 명 어린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디 멀리 팔려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다 땅바닥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을지, 고아원 같은 데에서 어린애들을 강제로 해외입양을 보낸다는 소문은 어린 나도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그 순간에 내가 동네 동생들을 지키려고 하며 필사적으로 차에 타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잘한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를 향해 뛰다시피 달려오던 박스 공장 아저씨의 굳은 표정을 생각하면, 그때 상황이 결코 호의적으로 어린애들을 차에 태우려고 했던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 실종은 접수되자마자 경찰은 전담반을 꾸려 신속하고 철저하게 대비한다고 한다. 어린이는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사리분별을 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 2012년 경찰청 통계자료에 의하면 취약계층(아동, 장애인, 치매환자) 실종은 총 42,169명 발생했고, 이중 보호자에게 인계된 경우가 41,797 명에 달해 99% 귀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를 비롯한 취약계층의 실종은 초동대처가 중요하므로 모든 인력을 집중하게 되고 대부분 안전하게 귀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CCTV라든지 휴대폰 위치추적은 물론이요 과학 수사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실종 후 바로 신고를 하면 어렵지 않게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다만, 1% 미만은 여전히 그 행방을 모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에 딸린 가족들의 노심초사를 생각하면 취약계층 실종자 가족 인계가 99%가 아니라 100%에 달할 때까지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성인 실종의 경우는 그 상황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2014년 경찰청 통계자료 성인 실종 신고 건수는 59,202건이고 이중 끝까지 미발견 상태가 4,094명이었다. 일본의 경우, 2019년 일본 경찰청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체 실종 신고 건수는 86,933명이고, 이중 84,362명이 주소가 확인되어 발견됐다고 하나 2,571명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개인 신분증이 없는 사람도 있는 일본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수의 실종자들이 있을 수 있다.
단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만 4,094명, 일본에서는 2,571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집을 나가기로 작정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찾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귀한 생명이고 존재들이다. 덧붙여 통계자료에 따른 실종의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이었다. 특히 치매로 인한 실종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그 외에 가족 문제 · 사업이나 취업 · 학업 · 이성 문제가 주를 이루었고 범죄와 연관된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1% 미만이었다. 1% 미만이라고 해도 실종자 수 대비 인원을 따져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에 의한 실종자는 꾸준히 있고 그에 따른 문제가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도 80이 넘으신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치매도 없고 기저질환 같은 질병도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분이라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가족들만이 알고 있는 사정까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80이 넘은 노인이 몸을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불행한 일을 겪어 사망을 했다면 시신이 반드시 있을 것인데 그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어디서 무얼 하며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인지, 그런 사람들이 몇 천 명씩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가능한 일인지 새삼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라든지 지문 등록 같은 것이 어느 나라보다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실종자가 해마다 4,000여 명이나 발생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무연고자로 등록이 되어 사망처리가 된다고 해도 DNA 등, 경찰이나 관련 기관에서는 시신 처리 등을 함부로 할 수 없을 테니 어떻게든 가족을 찾아주려고 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80대 노모와 50대 아들 둘만 사는 집이었다. 아들은 은둔형 외톨이(ひきこもり-히키코모리)로 30년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생활은 80대 노모의 국민연금 8만 엔(약 한화 82만 원)으로 꾸려 나갔다. 80대 노모가 어느 날 집안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지만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80대 노모는 사망했고, 노모의 사망 신고를 하게 되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니 아들은 집 앞 뜰에 구덩이를 파고 노모를 묻었다. 꽤 오랜 시간 죽은 노모 앞으로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을 한 아들이었지만, 관련기관에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재차 노모와 아들이 사는 집에 방문했고 결국 꼬리가 잡혀 아들은 구속됐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일본에서 여러 차례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연금 부정수급도 문제지만, 자연사이거나 살인으로 어딘가 암매장을 했는데도 버젓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 죽은 사람 신분으로 산 사람이 신분 세탁을 하거나, 죽은 사람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타 먹는 것이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일본에서 실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생활은 더욱 곤궁해지고, 죽음을 선택하거나 종적을 감추고 잠적하면서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도망을 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실종자’라고 생각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그 성격상 통계를 내기도 어려운데 한국에서는 대략 몇 만 명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그 숫자가 추정치로만 무려 100만 명을 넘었다. ‘8050문제’라고 해서 80대 부모가 연금 등으로 50대 자녀를 여전히 양육하고 있고, 50대 자녀는 사회에 나갈 기회를 놓쳐버려 고립을 선택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유사한 초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말이 있다.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다. 서로 조금씩만 도와주고 살펴주면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들도, 종적을 감쪽같이 감춰 어디 산속 같은 데로 숨어버린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본연금이라는 말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 유럽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남과 나눌 수 있는 것,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것, 그건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 굵직한 사건으로 보면「6·25 전쟁」·「제주 4·3 사건」·「4·19 혁명」·「5·16 군사정변」·「베트남 전쟁 월남 파병」·「5·18 광주 민주화운동」등 격동의 역사에서 실종자들은 무수히 있었을 것이다. 사망자들의 애통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나 죽음을 확인했다는 것으로 보면 유족의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건 죽음에 대한 수용을 하게 되는데, 실종자의 경우는 사망이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종자들이 어디선가 살아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가족들은 밤잠을 설칠 것이다. 이른바 ‘희망고문’이 실종자들이 살아서 나타나건 죽어서 나타나건 계속된다는 것이다. 실종자들을 찾을 때까지는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할 수많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실종자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가는 국가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종자들이 사라져서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복잡다단한 관계와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신분 세탁을 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선택한 삶이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어디론가 휩쓸려 간 것이라면, 범죄에 얽혀 소중한 생명을 잃은 것이라면, 인신매매로 인한 납치 등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소굴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탐사보도 프로그램 같은 걸 보더라도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은 사람들이 지원금을 노려 장애아동들을 납치하다시피 데려와 각종 농장에서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든지,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비롯한 단체 사람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해서 가족과 정을 끊게 하고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하며 세뇌를 해서 사회로부터 반강제 격리를 시킨다든지 하는 사건 보도는 심심치 않게 듣고 보게 된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이와 같은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분들 중 과학기술의 발달로 상당수의 무연고자 희생자들의 가족을 찾아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갑고 감사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4구의 무연고 시신이 여전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분들의 영혼이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을 텐데 어서 빨리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과학기술 및 의학기술의 발달로 희생된 많은 실종자들의 신원을 확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말했다.
“누구나 지옥을 걷고 있으니 타인에게 관대하라.‘
실종자와 실종자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겉모습에 차이가 없다. 모두, 아픔과 상처를 감추고 무겁고 힘든 하루를 넘어 저 멀리 다가오는 작은 빛줄기 같은 희망을 보고 걷고 뛰며 호흡하고 있다.
그러니, 남 일이 아니다. 몸이 불편하신 장애인 분들을 보며 그들의 삶이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 깊은 내면의 굴절된 욕망과 타인에 대한 엷으면서도 뚜렷한 시기심과 증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비롯되는 자기혐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심리적 압박이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수많은 마음들 때문에 늘 마음과 정신이 고달프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나는 수많은 잡생각에 마음을 다스리려고 명상도 해보고, 몸에 좋다는 음악도 매일 같이 듣고, 스님의 법문이나 성경 말씀도 곱씹는다.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의 마음에 지옥이 있을지 모르니, 다만 관대하게 바라봐주는 것 또한 미덕일 거라 믿는다.
우리나라에서 4,000여 명, 일본에서 2,500여 명 그리고 세계 모든 국가에서 매년 발생하는 수많은 실종자들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우리 곁을 떠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것이 죽느니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간절히 꿈꿔본다. ■
사진제공: H.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