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나는「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앓고 있다. 그런 내가 일본 ‘하시모토’에서 살게 된 것은 정말 기막힌 우연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거 같다.「하시모토 갑상선염」의 정식 명칭은『만성 갑상선염』이다. 일본 의사 ‘하시모토’라는 사람이 이 병을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그 의사의 이름을 따「하시모토 갑상선염」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해 갑상선 수치를 확인해야 하고 갑상선 부위에 대한 의사의 촉진도 필요하다. 병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2~3년에 한 번 갑상선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한다. 이 병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23살이었고, 지금은 42살이 됐다. 30대 중반까지는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는 약을 먹지 않고 경과 관찰만 하다가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호르몬 수치가 안 좋아졌고, 나는「하시모토 갑상선염」환자 중 30%가 걸리는『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되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나를 오래 치료한 의사는 어떻게든 약을 먹는 시기를 늦추려고 했고 나에게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진료 때마다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갑상선 기능 저하증』환자가 됐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다행히 약만 먹으면 별 이상 없이(하지만 때로 무척 피곤하고 힘들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갑상선 수치에 문제가 없으며, 초음파 검사 상에도 결절이라든지 멍울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아 이대로 잘 유지만 되면 본인의 기대수명을 살 수 있을 거라 의사는 말했다. 내가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고 하자 의사는 일본에 가서도 약을 꾸준히 먹고 정기적인 검사를 잊지 말고 받아야 한다고 했으므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 근처에 있는〈갑상선 전문병원〉을 알아봤다. 나는 한국에서 받은 진단서와 처방전에 나와 있는 의학 용어를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했고, 번역서를 첨부해 집 근처에 있는 일본〈갑상선 전문병원〉에 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일본에 오면서 내과나 치과를 비롯한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녔기 때문에 일본 병원 시스템에 익숙했다. 대체로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한국의 병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본 병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니기 시작한 일본〈갑상선 전문병원〉은 달랐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가 나를 보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받아온 진단서와 처방전을 내밀자 그때서야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진단서와 처방전을 펼쳐 훑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맞추었다. 사실 일본 의사의 눈에 내가 보였을지 나는 지금도 의심스럽다. 내 머리 뒤에 문을 본 것은 아닐까, 그만큼 나를 보는 시선이 건조하고 메말라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바쁜 직업이고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또 대기실에 환자가 많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환자를 보고 정신없으면 인사할 사이도 없나 했다. 바빠서 정신이 없는가 보구나, 힘든가 보구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보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앓아왔던 갑상선 질환에 대한 증상의 주요 내용을 일본어로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그때 의사가,
“그래서, 지금 증상이 어떤데?”
라고 하는 것이었다. 분명 반말이었다. 정확한 반말,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완벽한 반말이었다. 일본어는 한국어처럼 높임법이 상당히 발달한 언어이다. 그 높임법을 사용 못할 의사가 아니었다. 나는 순간 충격을 받아서 내가 해야 할 일본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니, 말 자체가 안 나오고 ‘헉’ 하는 통증 같은 신음소리가 나왔다. 내가 당황해서 입을 딱 붙이고 있자 의사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일본어 못해? 이거 당신이 일본어로 쓴 거 맞지? 일본어 조금은 할 수 있지?”
실수가 아니었다. 실수이길 바랐다.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기를 바랐지만, 아니었다. 의사는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에서도 불친절한 의사는 많이 봐왔지만, 처음 보는 환자에게 이런 식으로 반말을 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으며 호흡은 코뿔소처럼 거칠어졌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 근처에〈갑상선 전문병원〉은 여기뿐이라는 사실을 걱정했고, 여기서 화를 내서 의사와 틀어지면 그다음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도 근심스러웠으며, 이 황당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화를 누르고 간신히 대답했다.
“일본어를 못하는 건 아닙니다. 잘은 못 하지만, 선생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정확하게 알아들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네가 한 말을 나는 다 알아들었으니 반말하지 말라는 뚜렷한 경고. 내가 약간 눈을 치켜올리며 경고 신호등까지 보내주었는데, 내 경고를 역시나 의사는 알아보지 못했다.
“일본어 잘하네. 한국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여기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채혈해야 하고, 초음파는 1년에 한 번씩 해야 해. 한국에서 가져온 곤 상(권 씨) 초음파 사진 보면 확실히 갑상선염이 맞고, 처방한 약 먹고 3개월 뒤에 병원 다시 오면 돼.”
나는 황망히 그저 ‘네, 네.’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가 더 이상 나와 할 대화가 없다는 듯 등을 돌리기도 했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침이 바짝 마른 채로 진료실을 나왔다. 내 가슴에서 일고 있는 이 분노를 어떻게 일본어로 해야 할지 정리도 안 됐고, 한국말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나는 결국 자리를 펴고 드러누웠다. 너무나 분해서 몸이 다 떨렸다. 휴대폰으로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 의사 이력을 살펴보았다. 나와 동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의사가 반말을 해도 한국이었으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경우를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처 방법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의사가 나보다 나이라도 많았으면, 그래 내가 의사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하면서 마음을 달랬을 텐데 그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대끼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했다. 왜 내가 그때, 제대로 화를 내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병원에 전화를 해서 화를 낼까, 병원 사이트에 불만을 적을까 온갖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일단 자는 게 큰 약이 될 수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복기했고 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대처방법을 생각했다. 일단 일본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조언을 받는 일본어 교육을 전공한 일본인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경우를 당했는데 의사가 한 말이 반말이 맞느냐고 재차 확인했다. 반말이 맞고, 그건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인은 대답했다. 다만, 주치의 개념으로 자주 다니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고 가까운 사이가 되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 가벼운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고, 특히 어르신인 경우 그 빈도수가 많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처음 보는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라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일본 사회 분위기상, 의사들은 그 존재 자체로 ‘선생님’이기 때문에 간혹 환자들에게 반말을 하고 어려서부터 그런 의사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에 익숙하게 느껴 그것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인은 답변해주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며 오늘 만난 의사와 나는 처음 만났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지 어쩐지는 앞으로 진료를 받으면서 생각할 일이지 오늘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지인과 전화를 끊고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3개월 뒤에 병원에 다시 가야 했다. 그 3개월 동안 분노에 휩싸여 살 수는 없었다. 일단은 접어두고 내 일을 해야 했다. 대신 3개월 뒤 만약 똑같은 일을 겪을 경우 그때는 절대 참지 않을 것이며, 그때는 오늘처럼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질병과 관련된 의학용어를 일본어로 완벽하게 공부해두고 의사에게 해둬야 할 말을 일본어로 반복 연습하기로 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3개월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의사가 흰 머리카락이 많았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딱 내 나이였다. ‘그래, 한 마디만 반말을 해봐라, 어디, 한 마디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아 발음에 신경 쓰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당연히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듯이.
“그 사이 특별한 증상 있었나? 지난번 피검사 수치 보니까 정상이네. 약만 잘 먹으면 되겠어.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올라갔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일단 음식 조심하고. 다음에는 초음파를 좀 해야 할 거 같아. 그럼, 3개월 뒤에 다시 병원에 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너무나 확실한 증거 앞에서의 자신감이랄까, 묘하게도 나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의사가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진한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옆집 아저씨 같은 편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내가 의사를 깊고 냉정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진료실의 온도와 파장이 차갑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사도 느꼈을 것이다.
“3개월 뒤에 병원에 오면 된다고. 왜, 무슨 다른 증상이 있나?”
나는 준비했던 말을 최대한 정중하고 또한 정확한 높임법을 사용한 일본어로 의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존중해드리는 것처럼 저를 환자로서 존중해주세요. 저에게 반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약력을 보니 저하고 동갑이시던데, 저에게 반말하시는 이유가 혹시 저하고 친구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죄송하지만, 저는 선생님하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친구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반말을 삼가 주세요.”
일본어 발음을 틀리지 않으려고 나는 온 신경을 집중했고 3개월간이나 연습했던 말이기 때문에, 그리고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터라 아주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일본어를 말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면서 말한 일본어 중에 가장 완벽하고도 정확한 일본어에 가까웠을 거라 믿는다. 의사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더니 점점이 붉어져갔고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굴 전체로 얇고 진하게 번져가는 당황과 무안함, 크게 실례를 범했고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엄을 지킬까를 고민하는 표정 모두, 나는 느끼고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하고 싶은 말을 더 이어갔다.
“그리고, 저는 일본어를 잘은 못하지만 반말인지 존댓말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외국 생활에서 저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일본어를 잘못 사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실례를 범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요. 선생님이 하시는 의학용어까지 저는 모두 알아듣습니다. 공부했거든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을 잘 알아들으려고요. 그래야 제 병을 잘 알고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저에게 반말을 삼가 주세요.”
의사는 헛기침을 하고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내게로 향하던 시선을 살짝 피했다. 어려서 동네 친구들하고 얼음땡 놀이를 했을 때처럼 의사는 순간 얼음이 된 것처럼 굳어있었다. 그렇다고 의사가 나와 마주 보고 있는 자세마저 흩트릴 수는 없었으므로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5초쯤 고요했다. 진료실 밖에서 사람들이 중얼중얼 거리는 말소리, 간호사들이 채혈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 이름을 부르는 소리, 간호사실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진료실 밖의 새소리까지 그 짧은 5초의 시간 동안 모두 들렸다. 이윽고, 의사가 몸을 움직였다. 쥐고 있던 볼펜을 의사 가운 윗주머니에 집어넣더니, 그걸 왜 집어넣었는지 스스로도 황당했는지 다시 볼펜을 꺼내 손에 쥐었다. 당황한 모습을, 권위를 잃은 모습을 결코 환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이 나는 안타까워지기까지 했다. 무엇이었을까. 의사는 결국 의사 가운을 벗는 순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타인에 대해 상식과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람일 뿐인데 저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권위라는 허상이, 그 부질없음이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고 평소 입에 담지 않는 욕을 하는 것처럼 저 하얗고 평화롭게 보이기만 하는 의사 가운을 입으면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무례를 범해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인지, 나는 그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하고 의사의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 그러니까, 곤 상(권 씨)은 일본어를…… 잘하십니다. 아무 문제없이 일본어를 하세요……. 오히려 제가 일본어를 잘 못했습니다. …… 앞으로 신경 써서 말을 하겠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의사는 매우 떨면서 말을 했다. 입술이 떨리고 볼펜을 잡고 있는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화가 났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처럼 말을 한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병원에 다니는 수많은 환자들이 의사의 이러한 무례함을 참고만 있었다는 건데, 그 사실을 의사가 몰랐다는 게 나는 더 충격이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환자들의 표정이 어둡고 화가 난 것 같이 느꼈을 때는 몸이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순간이었고, 가슴 한쪽이 아팠다. 왜냐하면 이 병원에 다니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존재 자체로 귀한 사람들이 받았을 모멸감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의사의 저러한 태도 때문에 진료실을 나온 환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을 삭이고 있느라 얼굴이 어두웠을지 모른다는 확신도 들었다. 모두가 화가 난 것 같은 병원 대기실, 병원에 올 때마다 모두가 긴장하며 오늘은 또 얼마나 기분이 나빠질까 걱정을 해야 하는 병원. 이 병원 아니면 다른 병원을 가기에는 너무나 번거로운 환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이 병원을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에게 바른말을 하기가, 불편하고 어색한 사이가 되어 치료에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의사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기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거라는 것도 짐작이 갔다. 나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의사의 눈을 바로 보며 말했다.
“네, 선생님은 무례하셨고, 저는 불편했고 불쾌했습니다. 앞으로 조심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컴퓨터 화면에 내 진료에 관한 것과 처방약에 관한 내용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타자를 치는 소리가 매우 크게 진료실을 울렸기 때문에 나는 의사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더욱 잘 느꼈다. 의사는 나를 보지 않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다소 더듬으며 말을 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 3개월 뒤에 뵐 때는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하겠습니다. 약 잘 드시고…… 3개월 뒤에 뵙겠습니다.”
정중하고 절도 있으며 차가운 일본어였다.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게 만드는 일본어 특유의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냉정한 말투. 거기까지였다. 의사가 나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사과는. 그리고 인정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살아온 사람을 진료를 받는 몇 분 안에 내가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사과를 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감추려는 그 모습만으로 나는 위안을 받았다. 의사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했고 앞으로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됐다.
일본어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반말을 한다. 그건 우리나라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어는 그 정도가 더해 특히 가족 사이 같은 경우 무조건 반말을 한다. 가족 사이에 존댓말을 할 때는 공식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싸웠을 때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 가족 간의 친근감을 표현하는 반말이었다면 나는 수긍했을 것이다. 나를 가족처럼 생각해서, 나를 가깝게 생각해서 하는 반말이었으면 나는 일본어의 특성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사를 만난 지 겨우 3개월이었으며, 이번 진료를 합쳐 두 번 만났을 뿐이었다. 의사가 나에게 반말을 한 것은, 가족의 친근감이 아니었다. ‘나는 의사고 너는 환자다.’라는 상하관계와 위계관계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권위의식의 소산이었을 뿐, 그 외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고 얕잡아 본 실수까지 더해진 것일 뿐이었다.
언어에는 정말 온도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짓는 눈웃음 · 눈초리 · 주름이 펴지고 좁혀지는 순간 · 얼굴 피부 색깔의 변화 · 옅은 숨소리 어쩌면 얼굴 잔털의 떨림까지, 거기에 말할 때의 목소리 높이와 속도 더해 상황이나 맥락까지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합쳐지면서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친근감을 느껴 반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를 단번에 알 수가 있다. 그건 본능이며 육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아가들이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병원을 나오면서 다짐했다. 앞으로 나를 위해서,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 예고도 없이, 무례하고 비상식적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되돌려주고 해야 할 말을 할 것이며, 더 이상 겁을 내고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말이다. 그래서 그날 진료 때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건넨 말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새겼다.
세상에는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경력이 많다고, 직급이 높다고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어쩌다 내가 정색을 하고 나에게 왜 반말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원래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조건 반말을 한다는 정말 무례의 극치와 비상식의 정석을 보여주는 답변을 하는 치들을 만나고 겪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저 무시로 일관하고 상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대처를 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다. 적어도 내가 일했던 직장의 특수한 공간에서는 바르고 정직하며 무엇보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은 직장생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그때는 그런 무례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 하지만 이제 말할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이를 들이대며, 권위를 핑계로, 높은 자리를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 함부로 하는 못된 사람들에게 반드시 말할 것이다.
“무례하시네요, 불쾌합니다.”
〈갑상선 전문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와는 사뭇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무척 차가웠지만 어쩐지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에 나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에게 차분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심장 소리가 들릴 만큼 나는 분명 긴장했고 긴장이 풀리자 무척 피곤해졌다. 내가 지은 미소에 쓴웃음이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쓴웃음 짓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날을, 사람과 사람의 상식적인 관계를, 너무나 멀고 멀어 저 멀리 우주에서나 가능할 거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상식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병원으로 들어올 때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날은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사진제공: H.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