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20.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일본은 축제의 나라이다. 매년 여름이면 일본 각지에서 크고 작은 축제(祭り-마츠리)가 개최된다. 일본의 3대 축제가 있는데 도쿄에서 개최되는 '간다 마츠리(神田祭)', 교토에서 개최되는 '기온 마츠리(祇園祭)' 그리고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텐진 마츠리(天神祭)'가 있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ねぶた祭)'가 있으며 해마다 때가 되면 전국에서 다양한 축제가 펼쳐진다. 나는 일본에 살면서 일본 3대 축제 및 전 세계에서 엄청난 관광객이 온다는 '네부타 마츠리'도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네부타 마츠리'를 꼭 한 번 보고 싶은데, 코로나 시대라 전국의 모든 축제가 중지됐기 때문에 기약할 수가 없다. 서울에 살면서 63 빌딩을 한번 안 가본 거라면 비슷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일본에 살고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축제에 참가한 적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에도 해마다 8월 중순 경이면 축제가 열린다. 하시모토 JR 북쪽 출입구에서부터 약 1킬로미터 정도 되는 넓은 길이 축제 장소인데, 길 끄트머리에 '하시모토 진메이 다이 진구(橋本神宮大神宮)'라는 신사(神社)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신사에 먼저 인사를 드리고 나서 축제를 즐긴다는 풍습이 있어서, 축제가 시작되는 날에는 신사에 참배를 드리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앞뒤 사람과 몸을 바짝 붙인 상태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이 연출된다. 게다가 신사까지 가는 좌우에 각종 좌판 및 포장마차가 즐비해서 거기서 떡 꼬치나 닭 꼬치 · 해산물 꼬치를 사 먹는 사람과 각종 음료수나 맥주 등을 사 그 자리에 서서 마시는 사람이 뒤섞이게 된다. 좋게 말하면 사람 냄새나는 북적이는 시장 같은 분위기고, 나쁘게 말하면 그야말로 난장판 같은 분위기에 아수라장 같다.

나는 신사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보고 느끼고 싶어 축제 장소에 갔다가 중간쯤 길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을 겪으며 잘못하면 압사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에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했던 것은 모두들 웃고 떠들며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다. 일본 여름은 한국 여름과 달라 매우 꿉꿉하게 덥다. 습기가 높기 때문에 찜기에 들어가서 삶아지는 거 같은 느낌의 더위라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걷지 않고 밖에 나가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는데,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나를 중심으로 앞뒤로 꽉꽉 막혀 걷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라. 땀은 땀대로 온몸에 범벅이고, 좌판과 포장마차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와 어디선가 솔솔 풍기는 쓰레기 냄새 등이 뒤섞인 곳에서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 나는 참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한국에 살면서 축제에 참석해 본 기억이 있나 더듬어 봤다. 우리나라도 지역 축제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여의도 벚꽃 축제'와 '한강 불꽃 축제'에 참가해 본 적이 있을 뿐,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축제는 창피하게도 이 정도가 전부이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 전국 축제를 한 번쯤 다 가보고 싶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것이 많을까 생각할수록 기대가 되고 설레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축제가 얼마나 있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년 통틀어 100여 개도 넘는 다양한 축제가 전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그중 많이 알려진 축제로는 봄에 '진해 벚꽃축제', 여름에 '무안 연꽃축제', 가을에 '내장사 단풍축제', 겨울에 '화천 산천어 축제' 등 계절마다 다채로운 축제가 있었다. 그 외에도 '양양 송이 축제', '울진 대게 축제', '횡성 한우 축제', '전주 막걸리 축제', '이천 쌀 축제' 등 그 종류도 다채롭다. 노는 문화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민족이 우리나라 사람들 아닐까 싶다. 자리만 깔아준다면 즐겁고 재미있게 잘 노는 게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전국에 축제가 얼마나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겠는가? 버스 떠난 다음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심정이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꼭 참가해서 우리나라의 멋진 축제도 만끽하고 싶다.


일본의 축제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것도 있겠지만 볼거리가 참 많다는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보통 축제는 여름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북해도 '삿포로 눈 축제(札幌雪祭)' 같은 경우는 겨울 축제로 축제 기간인 2월이 되면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일본 북해도 삿포로로 모인다. 나도 2017년에 기회가 있어 '삿포로 눈 축제'를 보러 갔는데, 얼음과 눈으로 세계 문화 유산지를 조각해 놓은 조각품을 봤을 때에 조각품들로부터 느껴지는 경이로움과 조각의 섬세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눈과 얼음으로 재현해 낸 조각품과 마주 했을 때는 추위도 잊을 만큼 감탄을 쏟아냈었다. 전 세계 언어들이 마구 뒤섞여 들렸으며 세계인들의 얼굴을 그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남다른 기회도 됐다. 이런 세계적인 축제를 매해 개최하고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궁금해졌다. 한두 번 개최하고 없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하면, '축제의 나라'라고 할 만큼 세계인의 뇌리에 기억되는 것은 어떤 힘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일본의 축제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첫 번째가 '제사'로서의 축제이다. 일본어 '마츠리(祭り)'의 첫 번째 의미는 '제사'이다. 그 뜻에서 생각해보면 '제사를 지낸다.'라는 것이 곧 일본의 축제이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선조' 즉 과거 사람들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과거 선조들의 삶이 제사를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연결되며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염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축제 때, 일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신사를 방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신사는 바로 '선조' 즉 ‘과거 사람’ 또는 ‘죽은 사람’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선조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알고 보면 우리들은, 불의의 사고와 질병 등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묵묵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저 세상에 있는 과거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것이 '신사'라고 일본 사람들을 믿고 있고, 축제 기간에 신사에 찾아가 참배를 하는 것은 그토록 사랑하는 과거의 누군가와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녹아들어 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축제 기간은 8월 중순 추석 기간이 된다. 일본에서는 추석을 '오봉(お盆)'이라고 하는데 음력 추석을 쇠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양력 추석을 쇠어 한여름에 추석 명절을 보낸다. 바로 이때, 하늘에 있던 과거 사람들이 지상에 내려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 이것은 우리나라 추석 명절에 조상님들께 올리는 제사와 딱 들어맞는다.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제사상의 음식들을 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조상님들께서 오셔서 드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마음을 다해 제사상을 마련하게 된다. 그 시간에야 비로소 우리가 조상님들, 즉 ‘과거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축제의 두 번째 의미는 '페스티벌(festival)'으로서의 축제라고 생각한다. 경건하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에 더해 하늘에서 내려온 과거 사람들과 뒤얽혀 한바탕 크게 같이 어울려보자고 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과거 사람들이 지상으로 내려왔으니 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면서 시원스럽게 한번 놀아보자는 생각에 일본의 축제는 제사의 의미에서 한층 발전해 지금의 대규모 '페스티벌' 같은 엄청난 규모로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축제 때 사람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내가 도쿄 에도가와 바시(江戸川橋)에서 잠깐 살 때의 일이다. '에도가와 바시' 옆에는 '이이다바시(飯田橋)'라고 하는 곳이 있다. 현재 일본 총리인 스가 총리가 졸업한 호세대학(法政大学)이 있는 곳이다. 축제 기간인 줄 모르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이이다바시'에 갔는데, 그때 마침 동네에 소규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100미터 정도 되는 골목길을 막아선 곳 중심에 과거 사람들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믿는 ‘가마’를 둘러맨 가마꾼들 중심으로 나처럼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 · 퇴근하고 걸어가던 사람 · 축제인 줄 알고 구경 나온 사람 · 그냥 그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 ·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모두 일본 전통 악기 소리에 맞춰 대열을 이뤄 춤을 추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동그라미 정도 크기였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춤추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일자 형태로 길게 이어지면서 꽤 큰 타원형을 이루며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췄다. 이때 추는 춤을 '봉오도리(盆踊り)'라고 하는 데, 우리나라 말로 하면 '추석 때 추는 춤' 정도가 될 거 같다. 일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봉오도리를 췄고,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축제 기간에 낯 모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얽혀 음악과 박자에 맞춰 정해진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이 매우 신기하고 놀라웠다. 평소의 일본 사람들은 쌀쌀맞기 그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악수를 한다거나 가볍게 등을 토닥인다거나 하는 신체 접촉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얼싸안는다든지 특히 엄마가 자식들 머리나 등을 쓸어내린다든지 아들이나 딸이 엄마나 아빠 품에 폭 안긴다든지 하는 건 일본 사람들에게는 딱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신체 접촉이 없는 일본 사람들 생활을 보고 겪었기 때문에 축제 현장에서 서로 뒤얽혀 춤을 추고 때로는 손을 잡고 박자에 딱딱 맞춰 발동작을 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춤 동작이 끝나면 서로 등을 두드린다든지 악수를 한다든지 심지어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로서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정겨운 우리나라 사람들, 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어느 동네에 내가 서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 일본은 축제가 있어서 돌아가는 나라구나. 사람들이 평소에 꾹 참고 있다가 축제가 시작되면 그동안 참아왔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한꺼번에 내뿜는구나.'


머릿속에서 큰 종이 댕댕댕 하고 울리는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얄미울 정도로 매뉴얼대로만 움직여서 융통성이 없고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 사람하고 가족이나 친척보다 더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어 서로 무람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축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의 축제(마츠리-祭り)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냉정해 보이는 일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어야 이처럼 서로 한데 어울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 모두 외롭기 때문에 축제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비단 일본 사람들뿐이겠는가?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도 1년에 100여 개가 넘는 축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전 세계에서 유명한 축제로 손꼽히는 축제(리우 카니발 등)가 열릴 때는 각국에서 앞 다투어 보도하기도 한다. 과거 사람과 현재 사람이 만나 슬픔과 외로움, 고통과 시름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고 모두가 함께 배불리 먹고 마음껏 웃으면서 현재의 괴로움을 잊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소망인 것이다.


모두 함께 뒤섞여 어울리는 축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고독사' 또는 '미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불황의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홀로 죽은 이들이 남겨놓은 자리를 청소하는「특수청소업체」는 활황을 맞고 있다고 하니 서글픈 일일 수밖에 없다.

KBS [시사직격] 자료 보도에 따르면, 2019년에 '고독사'는 3,704건, 2020년에는 4,196건으로 하루 평균 11명이 고독사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자살률 1, 2위를 앞 다투고 있는 실정이며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홀로 되어 살아가는 갖가지 사정이 있겠으나 죽음의 순간마저 누구 하나 슬퍼해주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다면, 그리고 그런 일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외롭고 고독하며 아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2021년 일본에서는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신설하고 '고독·고립 장관'에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씨가 임명되기도 했다. 선진국 이면에 홀로 죽어가는 '고독사'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에서 이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할 만하다. 유럽에서는 이미 일본에 '고독·고립 장관'과 비슷한 직책이 있고, 자살·고독사를 미면에 방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각종 자살 보도 자료 마지막에 우울증으로 고통받거나 자살 충동을 느낄 때 연락할 수 있는 긴급 연락처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을 다잡으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얼마 전에 유튜브 사회 실험 채널에서 한강에서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을 봤을 때, 지나가던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강 다리에서 젊은 청년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먼 산을 바라보다 맨발로 펜스를 뛰어넘어 한강 다리로 뛰어들려는 바로 그 순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와서 한 손에는 휴대폰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하고 한 손으로는 청년의 옷자락을 붙잡고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장면이 있었다. 경찰에게 빨리 와달라고 하면서, 젊은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고 달래면서 말이다.

또 자전거를 타고 가던 어떤 시민은 젊은 청년에게 사정하다시피 매달리며 '잠깐만 바닥에 앉아라.'라고 붙잡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붙잡으니 젊은 청년이 바닥에 주저앉자 그 시민이 주저 없이 젊은 청년을 감싸 안으며 청년에게 '아무 말하지 않을 게. 그냥 잠깐만 이러고 있자.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괜찮아.' 하는 장면에서 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힘든 사람을 포옹해주는 것, 그것만큼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위로라는 가면을 쓰고 말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뒤돌아 봤을 때 그런 적 없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진정한 위로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들어간 말이 아닌, 아픔을 겪은 사람 곁에 묵묵히 그저 같이 있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유튜브 실험카메라에서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장면은, 젊은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한강에 뛰어내리려는 청년을 보고 타고 있던 자전거를 내던지며 청년에게 달려가 붙잡는 장면이었다. 그러지 말라고, 뭐 하는 거냐고 청년을 혼을 내면서 젊은 여성이 울기 시작하는데 젊은 여성 목소리의 진정성에 나도 그만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젊은 여성이 청년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그래요, 정말? 왜 그렇게 못된 생각을 해요?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은데. 그러지 말아요…… 제발."


생판 남을 대하면서도 가족을 걱정하듯 오열하는 장면에 나도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터지면서 엉엉 소리 내 울어버렸다.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구나, 내가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겠구나, 운이 좋으면 저렇게 큰 위로와 격려를 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구나.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을 이제는 만날 수 없을 거 같았는데, 유튜브 사회 실험 채널을 보고 나는 어떤 희망을 발견했다. 실험을 전제로 한 영상이었지만, 모두가 외로운 시대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슴 뿌듯하고 넘치는 행복감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극악한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 ‘아동학대 살인 유기’ 등 말만 들어도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쳐다봐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무참하게 때려 중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죽이는 일도 일어나고 있으니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경악을 넘어 도대체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특히 어린아이들을 죽인 인간들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라고 하면 악마에게 미안할 정도로 악마보다 더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 무섭고 참담한 마음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쩌다 바람결에 듣는 소문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뉴스만 틀면 나오는 일상의 다반사가 되어버린 현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됐다.


누구나 스트레스가 있다. 나 역시 어떤 상황에서는 인내력의 한계를 느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일 때도 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후회하지만, 역시 남을 향해 화를 내고 싸우자고 서로 덤빌 때 내 얼굴이나 상대방 얼굴을 거울로 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끔찍하고 불행한 얼굴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싸움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고,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는 선에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상황과 처지에 따라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으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 축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축제의 장에 우리 모두 뛰어 나와 함께 뒤얽혀 한바탕 크게 놀아봤으면 좋겠다.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양껏 먹고 마시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웃고 떠드는 시간도 반드시 우리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질서를 지키며 축제가 있는 일 년에 하루쯤, 세상의 모든 근심과 시름을 덜어놓고 주변 사람들과 뱃속부터 쌓여있는 울화와 외로움을 풀어낼 수 있는 장소와 자리가 마련된다면, 어쩌면 요새 급증하고 있는 흉악한 범죄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쌓이기만 하는 스트레스는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다. 한번 터져버리면 손을 쓸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제방처럼, 그 제방이 무너지면서 생긴 흙탕물의 소용돌이가 끝 간 데 없이 흐르고 흘러 어디까지 가 닿아 멀쩡한 사람과 장소를 한꺼번에 망쳐놓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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