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에 남긴 일상
모처럼 한가로운 토요일이다. 아내가 집에 없으니 한가로움이 더해진다.
아내는 오늘 생애 첫 대학과정 수업을 위해 등교했다. 52세의 나이에 학생이 돼서 아침부터 부산스러운 등굣길에 나선 것이다.
나는 아내의 교회 선배였고,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작은 출판사 외판사원을 하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설레는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 아내는 경제적 이유로 혹독한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퇴근 무렵 아내가 근무하던 동대문 시장 근처로 찾아가곤 했다. 캠퍼스의 꿈같은 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꿋꿋이 현실을 살아내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고, 대견해 보이기도 했기에 격려해 준다는 핑계로 같이 밥도 먹고, 귀갓길을 동행하기도 했다.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져 가던 무렵 아내가 자신의 배우자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첫 번째 - 학력이 높지 않을 것, 공고나 상고졸업생이라고 딱 못 박아서 이야기 했다.
두 번째 - 먹고 살 능력이 있을 것
세 번째 - 말이 통하는 사람일 것
나는 2번째, 3번째 생각에는 공감할 수 있었지만, 첫 번째 조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아니 왜?
[그녀] 기죽어 살기 싫어서, 잘난 체하고, 무시하는 사람하고 살기 싫어
위장취업을 막는 회사 입사도 아니고, 연애사에 고학력 제한 이라니, 참,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그냥 흘려버릴 수 없었다.
"평생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리고 기회 되면 학교도 다니면 되지. 네가 원하면, 내가 대학교 보내 줄게!"
그렇게 정말 멋대가리 없는 프러포즈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오늘, 아내는 첫 등교를 했다.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평생을 살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했을 학력에 의한 장벽이 있었을 것이고. 자격지심도 겪었겠지! 어쩌면 나도, 알게 모르게 약속을 어긴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 커버린 지금.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아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직도 학업 중인 두 아이와 아내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가족 4명 가운데 3명이 대학교 공부를 하는 집이 됐다. 덕분에 나는 이제 꼼짝없이 정년까지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