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임계점을 넘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02 촬영 단계
인터뷰, 생각보다 더 섬세하게 접근할 것
열심히 학교를 움직이며 전도인들을 촬영했지만, 단순히 그런 그림들만으로는 다큐멘터리를 구성할 순 없었다.
결국 인터뷰가 중심 뿌리가 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터뷰'를 대하는 마음 가짐, 인터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인터뷰라는 게 사실은 인터뷰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스튜디오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인터뷰이와 나 단 둘이서, '종교'라는 키워드를 놓고 인터뷰이의 진실된 마음을 이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마음을 조금 더 가볍게 먹기로 했다.
상대방의 진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신경을 썼던 것은 인터뷰이가 인터뷰 과정에서 본인이 마치 수단으로써 이용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인터뷰이가 도착하기 최소 1-2시간 전에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모든 촬영 세팅을 완료했고, 귀빈 모시듯 인터뷰이를 대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면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인터뷰 준비 과정에서는 미리 인터뷰의 큰 맥락을 그려보고, 질문들을 써가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현장에서 말할 거리가 떨어져서 인터뷰가 정지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자연스럽게 깊은 얘기로 들어갈 수 있게끔 완만한 흐름의 인터뷰 프레임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본론부터 꺼내기 시작하면 인터뷰이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설득 지식이 작동하면서, 결국 본질적인 인사이트를 놓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인터뷰의 컨셉을 '상호 간의 편안한 대화'의 느낌으로 잡아나갔다. 원하는 대답을 미리 정해놓고 들어가기보다는, 서로 간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래서 카메라 프레임에서 인물이 조금 벗어나더라도, 포커스가 조금 나가더라도, 카메라보다는 둘 사이의 대화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인터뷰이의 시선을 인터뷰어인 '나'에게로 맞췄다. 자연스러운 화면 구성을 위해 인위적인 시선처리를 하지 않았고, 나와 인터뷰이는 꼭 서로 눈을 보며 대화하도록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벽'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눈을 보고 대화해야 서로 간의 진심이 더욱 잘 전달될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총 4명의 인터뷰이와 스튜디오에서 총 6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미지의 대상과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결국 이 작업 또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진실된 속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03 편집 단계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에서 평소 갖고 있던 시각 효과에 대한 욕심을 더 쉽게, 마음껏 분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영화의 재료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이번에 느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종교' 라는 키워드 자체가 굉장히 무거운 주제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그 무게감을 상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중심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논리성과 일정 수준의 깊이감을 확보함과 동시에 빠른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영화 상에서 의견이 가장 크게 대립되는 두 인터뷰이가 마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서로 논쟁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편집했다.
이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터뷰 딕테이션을 했다. 여기서 핵심은 인터뷰이의 말을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었다. 단어 하나 하나가 해당 단락의 핵심을 이끌어 나가는 주요 편집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04 작업을 마무리 하며
정말 학교 생활 역대 최대로 바빴던 한 학기였다. 매일 매일 해야할 것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고, 매 시간 시간을 쪼개가며 쌓여 있는 할 일들을 하나 둘씩 해나갔다. 복수전공에 실기 수업이 3과목, 생계를 위해 굵직한 모션그래픽 외주 작업도 했고, 친구가 창업한 매장의 디자인 작업도 도와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외부 디자인 교육 과정까지 이수 해야 했으니. 바쁜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정말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불가능의 임계점을 넘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라는 이제는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말을 떠올렸다. (심지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뒀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문제 상황들이 나를 더욱 성장시켜 줄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고난을 잘 이겨내고 난 이후에 더 그릇이 큰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버텨나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 시사 까지 마쳤다. 그리고 어제 이번 학기가 완전히 끝났다. 확실히 예전보다 내 스스로가 조금은 더 단단해진 것을 느낀다. 이제 웬만한 바쁨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다. 미친 듯한 바쁨 속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근본은 대개 '해야할 일을 다 하지 못 할 수 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데, 이번 한 학기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마무리해내면서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학기 단편 영화 작업 때는 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이번 다큐멘터리 작업에서는 작품의 퀄리티와는 관계 없이 자존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연출은 선택 사항이라 학기 초에 이걸 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됐는데, 부딪혀보길 잘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