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더 읽게 되더라
한창 욕심이 생겨서 책을 엄청 사들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책이 한 두 권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머리맡에 두고, 내 시야 속에 두니까 평소보다 더 많이 읽게 되더라. 체감상.
그래서 방에 책장을 들이고, 누웠을 때 가장 시야에 잘 닿는 곳에 두었다.
잠들기 전이면, 누워서 노트북을 하거나 폰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머리맡에 책장을 두는 게 가장 내 시야에 가장 잘 걸리는 게 맞는데, 방 구조상. 내가 자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쉽지가 않다.
그래서 책장을 내 옆에 눕혀 두기로.
침대가 없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기 때문에. 가구들의 높이가 낮은 것이 편하고, 자연스럽다. 2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누워서 옆을 보면 책장의 가장 오른쪽 칸이 보인다. 그래서 가장 오른쪽 칸에 가장 자주 읽는 책들을 꽂아두었고, 왼쪽으로 갈수록 가끔씩 읽는 책들을 놓았다.
그리고 책을 빡빡하게 꽂지 않기로 했다. 머리맡에 있을 때 보다 책장에 꽂혀있으면 손이 분명 덜 가게 될 텐데, 빡빡해서 꺼내기까지 힘들다면. 책장을 놓은 이유가 사라져 버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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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낡고 오래된 집이라, 새롭게 집을 뜯어서 고치지 않는 이상 인스타에서 볼 법한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엔 마냥 그런 이쁜 방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저 내 공간이 조금 더 시각적으로 아름다웠으면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보다 중요한 건 온전하게 나 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년의 시간 동안 이 방에 쌓인 내 모습들을 잘 살펴보고, 그저 그것들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애써 레퍼런스를 찾지 않아도 충분하다. 새로운 가구를 많이 사들이지 않아도 좋다. 당연하다 생각하고 집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것들을 찾아서 온전히 나를 위해 쓰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
그렇게 부엌에서 전자레인지를 담고 있던 책장이 내 방으로 들어왔고, 내 방에서 본래의 기능을 되찾았다. 책장도 책장다워졌고, 내 방도 더 나 다워졌다.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하며 샀지만, 매번 닫혀있던 아이패드도 펼쳤다. 그리고 왓챠플레이로 영화를 틀어두기로 했다. 컨텐츠 부채가 너무 많이 쌓여있기도 하고,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하나 쯤 있으니 방에 활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온전하게 나 다운 공간이 어떤 건지 고민하는 건 참 즐겁다. 미세하게 삶의 질이 올라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아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