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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Jan 18. 2019

PORTO. 8

포르투 21일, 살아보는 여행의 기록


1.17 10:03 AM에 쓴 글


이 곳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 진짜 정말 빠르다. 어떻게 이렇게 지나갈 수가 있는거지.


출발하기 전엔 대단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자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매일 일기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멋드러진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 형태가 어떠하든 이 곳에서의 생활을 조금 더 다양한 형태로,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수집하고 싶다. 


분명 오기 전엔 영상 만들고싶단 생각이 별로 안들었는데, 점점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건 왜일까.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온걸까. 온전한 내 컨텐츠를 갖고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금고에 넣어두고 잘 꺼내지 않았던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어보자. 그냥 카메라를 들고 나가보자. 그렇게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올 때, 겁먹지 말고. 등지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보자.




1.17 22:05에 쓴 글



사진 찍으러 나가기 전에 살짝 나른하길래 부엌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커피 마시던 중에 호스트 할아버지분이 내 앞에 앉으시더니, 뭘 써서 나에게 건네주신다. 요즘 간단한 포르투갈어로 호스트 할머니 할아버지분과 대화하고 있는데,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셨는지 적극적으로 포르투갈말을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그저 감사할 따름.

prato - 접시
Xicara - 컵
Piris - 뭐였더라..?
Colher - 숟가락



호스트 할머니가 부엌에서 케익을 만들고 계셨는데, 조금 떼어주시면서 맛 보라고 했다. 엄청 부드러운 카스테라 케익 느낌! 이름은 bolo de mosa. 브라질 전통 방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만드는지 재료들 하나씩 보여주시면서 레시피를 알려주셨다. 나중에 직접 종이에 써주시겠다고. 호호. 흥미로운 여행의 흔적을 또 하나 남겨갈 수 있겠다.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밖을 나왔고, 외국인이 가면 가장 낯설만한 동네가 어딜까 생각하면서 메트로를 탔다. 그러다 갑자기 내 또래 포르투갈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해졌고, Polo Universitao 역에 내려서 대학교 구경을 했다. 디자인대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문이 잠겨있었고 결국 바깥에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메트로를 탔다.


Pólo Universitário, Porto design factory

R. Dr. António Bernardino de Almeida 537, 4200-072 Porto





원래는 캄파냐역으로 가려 했는데, 깜빡하고 한 정거장 지나버렸다. 돌아가는 메트로를 탈까 하다가, 거리가 얼마 안되길래 캄파냐역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Estádio do Dragão

Via Futebol Clube do Porto, 4350-415 Porto





시골 느낌나는 조용한 골목길이 나타났고, 다양한 외벽 모양을 가진 집들이 일렬로 펼쳐져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가지 수의 타일 패턴들을 구경하는게 너무 재밌더라. 서로 관련 없는 사물들이 우연하게 나란히 놓였는데, 깔맞춤 된 상태를 보는 것도 참 재밌다.





골목길 초입에서 허름한 까페 하나를 만났다. 가게 앞에서 나이가 지긋히 드신 할머님께서 청소를 하고 계셨고, 나는 이상하게 그 풍경에 마음이 끌렸다. 소심하게 멀리서 몰래 사진 한 컷 찍고 지나가려다가, 웬지 이 곳은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발길을 다시 돌렸다. 가게 입구에서 "cafe" 라고 말씀 드렸더니 자리를 내주셨다. 커피 한 잔을 시켰고, 이 곳에서 쉬어간 것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영수증을 부탁드렸다. 





영수증 뽑는 걸 오랜만에 해보신 것 같았다. 한참동안 포스기를 뚝딱뚝딱 누르시고는 영수증을 내어주셨는데, 커피가 여덟 번 찍혀있더라.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다 마실때 즈음까지 한참 더 포스기와 씨름하시더니, 다시 커피가 한 잔 찍힌 영수증을 나에게 주셨다. 물론 영어는 1도 안통했는데, 그래서 더 재밌고 좋았다.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길 잘했어.





오늘 새롭게 배운 것. 여행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선 일단 망설이지 말고 부딪혀보자. 높은 확률로 재미난 일이 일어난다.


Cafe MUSTANG

R. S. ROQUE LAMEIRA N-1945 (여긴 심지어 구글맵 상호 등록도 안되어 있다)





네시 반에서 다섯 시쯤 될 무렵,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벽에 묻은 그림자 모양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건물들의 높이가 비슷하고,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다보니 건물에 그림자가 아주 선명하게 생겨났다.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자들, 아주 강한 콘트라스트. 참 좋았는데 사진도 없고 찍어놓은 것들도 다 별로다. 고장난 내 손을 탓하자.





저녁 먹으려고 숙소가 있는 메트로역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또 한 번 낯선 가게에서 밥 먹고 싶은 마음에. 





Livraria Alfarrabista Candelabro

Rua de Cedofeita 471, 4050-181 Porto





EARLY

Rua dos Bragas 374, 4050-122 Porto





Yesterday, 2nd Hand Shop

Rua da Torrinha 121, 4050-611 Porto





O Consulado (분위기 좋아보이는 디저트 카페, 사진 구글 펌)

Rua de Cedofeita 382, 4050-174 Porto


저녁은 햄버거 먹기로 결정했고, 햄버거 가게 가는 길에 눈에 띈 곳들 기록해두기.





호기심이 들면 일단 들어가봐야해. 머뭇거리다가 지나치지 말자! 햄버거집 가는 길에 Namban 이라는 일본 가정식파는 곳이 있길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급 방향 전환) 일찍 마감하셔서 아쉽게도 밥은 못먹었다. 일본인 부인과 포르투갈인(?)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너무 편안하게 웃으시면서 나를 맞아주셨다.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 내일 점심은 여기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Namban

Rua dos Bragas 346, 4050-122 Porto





너무 배고파서 근처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너무 열심히 걸어다녔는지 엄청 피곤하기까지 했다. 가게 이름이랑 같은 메뉴(리얼 버거)를 하나 시켰고, 진짜 말그대로 리얼한 버거였다. 머리 아플정도로 강한 토마토 케첩 맛. 첫 입까진 괜찮았는데 두 입, 세 입째 되니까 금방 물려서 먹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내 입 맛이 까다로운건지 아니면 정말 이 동네는 별로 맛있는 음식이 없는건지. 입에 착착 감기면서 내 기분을 좋게하는 음식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감튀는 맛있던데. 내 메뉴 선택이 잘 못된걸수도!


Real Hamburgueria

Rua da Torrinha 134, 4050-609 Porto





그렇게 힘 없는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빤히 계속 날 쳐다보던 길냥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루 하루를 채워나갔고, 약간의 강박도 있었던 것 같다. 이 곳을 떠나는 날은 정해져있고, 또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단 생각에 조급함이 밀려왔다. 아직 2주나 남았는데 말야. 방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 조차도 여행지에서는 새로운 일.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자. 살아보는 여행인데, 평소 하던 것 처럼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보자.





데스페라도스 한 병이 처넌! 무려 한국의 25% 가격.


그러고보니 영상은 못찍었네. 굳이 영상으로 오늘 본 풍경들을 남겨야겠단 생각은 안들더라. 꼭 영상으로 남겨둬야겠단 마음이 들 때가 오겠지.


오늘의 일기 끗. 태욱이 오늘도 수고했다!

 


23,224원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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