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에도 돼지를 풀어놓자

by 김명섭

서울에도 돼지를 풀어놓자


김명섭



큰 화채 그릇처럼 생긴

펀치볼 안에

뱀들이 너무 많아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옛날

뱀에게 물려도 독이 퍼지지 않는

겁 없는 돼지를 풀어놓아

돼지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는

말 그대로 해안면(亥安面)

이 마을 전설을

촌로의 이 빠진 말로 들었다


뱀이 우글거리는

서울 분지가 떠올랐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뱀

혀를 날름거리며 헛소리하는 뱀

꼬리를 빼고 잘 도망가는 뱀

똬리를 틀고

잘못된 기득권을 지키는 뱀

사람을 물어 죽이는 뱀


이 뱀들과 뒤엉켜 살고 있는 우리

서울에도 돼지를 풀어 놔야겠다

비계가 두꺼운 돼지

먹성 좋은 돼지를


* 펀치볼: 화채 그릇.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을 일명 펀치볼이라고 부름.

* 해안면: 강원도 양구군 동북단에 있는 면소재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휠얼라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