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돼지를 풀어놓자
김명섭
큰 화채 그릇처럼 생긴
펀치볼 안에
뱀들이 너무 많아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옛날
뱀에게 물려도 독이 퍼지지 않는
겁 없는 돼지를 풀어놓아
돼지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는
말 그대로 해안면(亥安面)
이 마을 전설을
촌로의 이 빠진 말로 들었다
뱀이 우글거리는
서울 분지가 떠올랐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뱀
혀를 날름거리며 헛소리하는 뱀
꼬리를 빼고 잘 도망가는 뱀
똬리를 틀고
잘못된 기득권을 지키는 뱀
사람을 물어 죽이는 뱀
이 뱀들과 뒤엉켜 살고 있는 우리
서울에도 돼지를 풀어 놔야겠다
비계가 두꺼운 돼지
먹성 좋은 돼지를
* 펀치볼: 화채 그릇.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을 일명 펀치볼이라고 부름.
* 해안면: 강원도 양구군 동북단에 있는 면소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