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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Jul 27. 2019

담백하고 순연한 맛, 옥수수에 관한  추억

짠맛과 단맛이 옥수수 본래의 맛과 어울려 나오는 그 감칠맛을 사랑한다

  우리 친정집에서는 옥수수 끝물에 옥수수를 넉넉하게 사서 소금, 뉴-슈가와 함께 찜통이나 가마솥에 넣고 푹푹 삶았다. 이렇게 찐 옥수수는 작은 비닐봉투에 한 번에 먹을 분량씩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고 급랭시킨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가족이 사랑하는 옥수수를  먹기 위해서다.       



 

  내가 한 살 때 우리 식구는 임실 산골 마을에서 전주로 이사했다. 우리는 알고 지내던 모 대학 교수 집 아래채에 셋방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셨다. 당시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고 또 틈틈이 블럭 만드는 공장에서도 일을 하셨다. 어머니도 방직 공장에 나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셨다.

       

  열심히 일하고 적금 들어 모은 돈으로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동네 신작로 근처에 허름한 가게를 사서 허물고 그곳에 새 집을 지었다. 회색 타일과 시멘트로 지은 집은  아늑했고 새 집이라 더 없이 좋았다. 어머니는 거기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셨다. 남부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떼어 와서 공산품과 함께 팔았다. 가게는 작지만 위치가 좋았고 붙임성 있고 부지런한 어머니 덕분에 항상 손님이 북적였다

   


옥수수를 부어 놓아 수북이 쌓여있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여름과 초가을에는 시골 친척에게서 옥수수를 몇 포대씩 사 왔다. 식구들이 방안에 빙 둘러앉아 그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그것들을 가게 앞 화덕 위 큰 찜통에 넣고 쪄서 팔았다.


  찜통 속에서 옥수수가 푹푹 쪄지고 있을 때,

 “손에 데일랴. 조심해라.” 는 어머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찜통 뚜껑을 열어보며 익어가는 옥수수를 탐하곤 했다. 맛있게 잘 익고 있는 옥수수 특유의 단내를 맡고는 입맛만 다시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기억이 이 글을 쓰는 내내 물큰하다.


  어린 소견에도 팔 물건이니 내 입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때 옥수수 장사는 제법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옥수수를 많이 먹었던 것은 부모님이 슈퍼를 그만두고 나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퍼가 너무 잘 되어 슈퍼를 그만두게 되었다. 슈퍼 일이 힘에 부치신 어머니 몸이 자주 편찮아지셔서 그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대신 아버지가 농사지으신 쌀을 파는 가게로 전업을 하였다.


  어머니는 간식으로 감자와 옥수수를 푸짐히 쪄서 소쿠리에 내놓으시곤 했다. 쩍쩍 벌어진 감자도 맛있게 보였지만 나는 옥수수를 먼저 집어 들곤 했다. 내 입맛에 으뜸은 단연 옥수수였고 지금도 그렇다. 온 가족이 옥수수를 좋아하다 보니 20여 개를 쪄도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마지막 남은 옥수수는 오래 먹으려 한 톨씩 까먹으며 아까워했다.

     


  

  우리 남매들은 방학이 되면 친척집에 보내어지곤 했다. 그때 부모님 두 분 모두 늘 바쁘셨기 때문이다. 이모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고모 등 친척집에서 주말을 이용해 2~3일씩 묵곤 했다.


  어느 여름방학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구이 동적골에 사는 이모할머니 댁에서 모기를 쫓으려 마른 쑥 연기를 피워 올리고 멍석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모할머니가 갓 쪄낸 옥수수를 가져다 주셨다.


   까만 밤하늘 밑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 옥수수를 뜯어 먹고 맛있는 여름밤을 지새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옥수수 알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반짝이는 옥수수알들이 촘촘히 성실하게 박혀 있다

  한여름 땡볕에서 농사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쉬고 싶었을 이모할머니 가족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꼬마 손님들을 맞아 저녁에도 분주히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추억을 만들어 주신 이모할머니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더없이 고맙다. 이모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다.


  지금도 “울 귀한 손주 딸내미 모기에 뜯기면 안 돼야.” 부채로 모기를 쫓아주시던 바쁜 손길이 느껴진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집에서 내 별명은 ‘옥수수 귀신’이다. 차를 타고 가다 옥수수 파는 곳이 보이면 나는 꼭 차를 멈추고 옥수수를 산다. 남편은 “아무 맛도 없는 옥수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옥수수를 쪄서 내놓아도 잘 먹지 않았다.


  결혼 생활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만큼은 아니지만 이젠 남편도 옥수수를 사서 서로 나눠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에 남이 빌려준 서 너 평의 텃밭을 일굴 때 찰옥수수 씨앗을 심었다. 거름기 없는 땅이라 수확이 많지 않았다. 채 여물지 않은 옥수수지만 냉동실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두어 번 맛나게 먹었다.  

     



  옥수수가 별 맛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까맣고 노랗고 또 어떤 것은 하얗기도 한 옥수수 알에서 느껴지는 찰진 식감, 짠맛과 단맛이 배여 옥수수 본래의 맛과 어울려 나오는 그 감칠맛을 사랑한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그 담백하고 순연한 맛.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옥수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올해 텃밭에 심은 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다 속이 아직 여물지 않은듯, 옥수수 열매가 가늘다. 잘 먹는 옥수수 귀신이지만 농사는 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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